제156집: 참된 식구가 되자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64 Search Speeches

통일교회 식구" 심정과 사정과 소망이 일치돼야

오늘날 우리 국가 정세를 보나 국외 정세를 보나 세계는 마지막 판국을 향하여 기울어져 가고 있나니 이 가운데서 이것을 수습하려면 이 기울어져 가는 운세를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박차고 넘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 물결이 세면 셀수록 거기에 딸려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맨 가운데서 이것을 거슬러 가지고 밖으로 나와야 돼요.

더우기 오늘날 이 한국은 세계의 소용돌이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보나 중심이 되고 있고 민주 공산 좌우 진영의 틈바구니에서, 복잡한 삼각 지대권 내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마당에 있으니 여기에 그냥 있다가는 다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박차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악한 운세를 반대적인 행보로서, 반대적인 노정으로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힘의 움직임, 이것을 감당해 낼 수 있는 그런 민족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않고는…. 여기서부터 올바로 풀려 나가는 날에는 이 중심이 서지만, 그렇지 않으면 중심이 안 서요.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젊은이들은 이런 신념을 가져야 됩니다.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은 곧 가정에 돌아가서 밥을 먹게 되면 밥 먹는 그 가정권 내에 있는 식구가 아니예요. 여러분은 '삼천리 반도에 널려 있는 통일의 우리 젊은 형님 누나들은 이 시간도 수고하고 있구나. 내가 여기서 감히 거기에 동참하지 못할지라도 눈물과 더불어 소망과 더불어 심정과 더불어 …' 이럴 수 있어야 됩니다.

심정과 사정과 소망! (판서하심)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심정이 일치가 되고, 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소망이 일치되어야 돼요. 사정은 생활이예요, 생활. 사정을 통하지 않고는 하늘과 일체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심정을 통하지 않고는 원칙적인 자리에 설 수 없어요. 소망이 일치하지 않고는 목적의 세계를 이룰 수 없어요.

이 세 가지 가운데 여러분이 심정과 사정이 일치되든가, 심정과 소원이 일치되든가 둘 중의 하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보면 사정을 통하지 못합니다. 지금 복귀의 노정을 거쳐가는데 내가 행동 못 한다고 해서 결코 낙망할 일이 아닙니다. 행동을 못 하거들랑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의 소망은 망하지 않았소이다' 하고 소망을 끌어당겨 심정에 불타야 된다는 거예요. 이 삼천만 민족 앞에 나가 싸우는 우리 통일의 무리들을 붙들어 가지고 생활적인, 하나님의 사정적인 발판을 내가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뜻 앞에 합당하게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그런 여건이 있으면 내가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내 마음으로 힘이 되어 보태 주겠다고, 내가 모든 이념적인 기준에 있어서 밀어 주겠다고, 혹은 식구들이 찾아오면 나는 못 가지만 붙들고 눈물 흘려서 그들을 격려하여 또다시 힘차게 갈 수 있는 자극을 일으켜 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는 한 망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같이 행동을 해야 됩니다. 행동을 못 하게 되면 찾아오는 그 식구들을 대접하고, 소망을 갖고 찾아오는 식구들에게 더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소망의 마음을 플러스 해줄 수 있는 입장에라도 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행동은 못 했지만 하늘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러한 입장에 서지 못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낙망을 주고 후회하게끔 만드는 사람은 식구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셋을 한꺼번에 다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로되 어떤 딱한 사정이 있어서 다 하지 못할 때에는 둘이라도 해야 돼요, 둘이라도. 내 사정은 아무개가 대신해 준다는 거예요. 그들을 위하여 마음으로 기도해 주고 눈물을 흘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오게 되면 격려해서 자기의 소원을 향하여 달려 나갈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더해 줘 가지고 그가 찾아왔던 보람을 느끼고 힘을 느껴서 `대신 내가 싸우겠습니다'라고 하게끔 만들어야 형제지 그러지 않고 박대하고 `뭘 또 왔어' 그러는 사람은 식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식구가 뭐냐? 눈물짓는 자리에서는 혼자 눈물짓는 것보다 식구와 더불어 눈물지으면서 기도하고 싶은 거예요. 십자가 고통의 자리에 있게 될 때 혼자 고통을 받으며 기도하는 것보다는 둘이 기도하면 기도가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이 이루어 주겠다 하셨습니다. 그게 창조원칙이예요. 주고받으면 반드시 거기에는 번식이 벌어지는 거예요. 번식이 벌어지면, 주체적인 하늘은 반드시…. 4위기대를 조성한 이념 권내가 벌어지면 하늘이 여기에 개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길을 가는 신앙생활을 하는 식구들에게 있어서는 외로움이 부딪쳐 오는 것이요 혹은 슬픔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런 환난이 부딪쳐 올 적마다 반드시 상대적인 식구를 그리워하게 된다는 거예요. 혼자 슬퍼하는 것보다는 찾아가 가지고 식구를 붙들고 자기 사정을 토로하게 될 때 그 식구를 대신하여 같이 힘을 보충해 줄 수 있고, 힘을 북돋워 줄 수 있다는 거예요. 같이 격려하여 우리의 원수를 기필코 굴복시키고 말겠다고 서로서로 위로해 주고 서로서로 힘이 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하는 것은 식구가 아니요, 형제가 아니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