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눈물과 부활 1970년 06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2 Search Speeches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눈물흘리고 회개해야

그러면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런 사망권의 자리를 박차고 넘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원한의 근거지. 원수가 농락하는 이 환경을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 가운데서 원수들과 싸워서 이기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눈물이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 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했고. 예수님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그 나라를 얼마나 고대하고 흠모하면서 4천년 동안 눈물의 역사를 엮어 왔습니까. 그 소원의 나라가 오기를 그렇게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소원을 맞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나타난다고 말한 것이며, 그 소원의 새로운 한날이 목전에 다가오기에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와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고 한 것입니다. 그 말은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못한 인간들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며,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말한 것은 예수 자신이 아버지의 뜻 가운데서 죽되 이스라엘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위해서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살았고, 이스라엘을 위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수가 죽어가며 흘린 피눈물이 귀할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뜻 앞에서 세계를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한 분이 다시 와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부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느냐? 가정의 부활권을 갖춘 다음에 개인이 부활해야 구원받고 안식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가정적 구원의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이 구원받아 부활하면 가정적인 시련을 또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천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천국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은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의 복귀역사인 것입니다. 죄 때문에 사망의 쇠사슬에 얽매여 있는 인류는 형제와 동료간에 서로서로 위하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나보다도 불쌍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무리가 되었으며, 이런 실체를 가지게 되었는가? 인간 시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역사를 지탱시켜 나오고 섭리의 뜻을 추진시켜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눈물어린 심정으로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아버지를 천년 만년 모시지는 못하 더라도 그 아버지 앞에 천년 만년 소원하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해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승리의 왕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의 후손들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모시지 못하더라도 세계를 위하여 찾아오시는 아버지는 반드시 모셔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과 세계를 위하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위대한 것입니까?

그러면 사람들이 천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십년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을 더 기다려야 하느냐. 영원이라는 것은 십년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년 역사 이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을 소망하는 우리들은 천년의 한스러운 역사적인 세계의 한계를 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아무리 부정당하더라도 내일의 세계를 위하여 정성들이고 눈물지어야겠습니다. 그것에 대한 보답이 당대에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않으며, 역사는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천년을 회개할 수 있는 회개의 눈물을 지으며, 천년을 대비할 수 있는 하나의 제단을 꾸며 하나님의 중심적 기원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역사, 그러한 인연이 지어지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지 막히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 길은 언제든지 하나님이 개척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죽어 갔기 때문에 민족이 그를 따르던 무리를 학살하는 환경에 몰아 넣어도 하나님은 그런 환경에서 그 원수를 물리치고 원수의 나라를 개척하여 오늘날의 기독교를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기독교가 오늘날 민주세계의 문화를 창건하는데 정신적인 기반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한계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세계를 위해 보내진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입장에서 눈물을 지으며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세계를 창건하는태 원동력이 된 기독교를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지금처럼 발전해 나오는 과정에는 수많은 칼과 수많은 원수와 환경이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을 허물고 그 길을 개척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역대 발전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