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집: 오고 가는 인생길 1972년 11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7 Search Speeches

이왕지사 죽을 "-" 기쁨을 가지고 죽어야

이런 관점에서 역사에 대해 쭉 총평을 내리고 결론을 지어 깃발을 꽃아 놓은 그 사실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다고 우리가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이 있는 곳을 안내할 수 있는 하나의 안내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 안내자가 무엇이냐? 그가 재림주가 아니더냐.

그러면 그분이 와 가지고는 뭘할 것이냐? 임박한 자리에 찾아와서 '야, 가라!' 이렇게는 안 할 것입니다. 다리를 놓는 데 코치도 하고 모든 준비를 하고 그래야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일 것이 아니겠느냐. 이러한 문제를 두고 볼 때, 오늘날 기독교가 믿는 것과 같이 재림주님은 악이 망할 순간에 벼락치면서 올 수 없는 분이 아니냐.

다리는 누가 놓느냐? 모르는 사람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리를 놓을 수 있게끔 한 다음에 개인적인 다리, 가정적인 다리, 종족적인 다리, 민족적인 다리, 국가적인 다리, 세계적인 다리를 놓아 가는 것입니다. 먼저 갈 수 있는 그때가 되기 전에, 한꺼번에 왈카닥 올라갈 수 있는 때가 되기 전에 미리부터 옮겨 놓아 가지고 거둘 수 있게끔 훈련시키는 놀음까지 할 것이 아니겠느냐.

그런 무리가 지상에 끝날이 되기 전에 있을 성싶다 하는 것이 우리들이 추리하는 논법에 의한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기수가 나와야 하고, 그 사명을 따라가는 무리가 나와야 되고, 그 사명을 따르는 나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거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인간은 절망과 불안한 상태에서 부딪쳐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깨지면 어디가 깨질 것 같아요? 곤드레만드레 이마를 받혀서 깨져 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달리면서 담벼락에 부딪쳐 옥살박살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런데도 아이구 내 엄마야, 내 아빠야, 내 아들딸아 그렇게 찾겠어요? 그때는 절망의 한 순간도 기쁨의 한 순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것만을 붙들고 가야 합니다. 그때에는 전체의 나를 믿지 못하겠기 때문에, 그 절망권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절망 보따리를 지고 영원히 유리고객하는 영인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이왕지사 죽을 바에는 기쁨을 가지고 죽어야 됩니다. 숨막히는 그 순간이 다가올 때 희망과 소망 가운데서, 내 생명이 끊어지더라도 소망을 갖고 기쁨을 추구하면서 죽어간 영은 영생의 세계에서 희망과 기쁨의 출발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과 비애와 비탄 가운데 갔으면 그렇게 출발해 가지고 영원히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에 나오듯이 하나는 천국으로 통하는 것이요, 하나는 지옥으로 통할 것입니다.

이러한 길을 가려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길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살이 가운데 그러한 훈련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고 희생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려니 죽을 때까지 그 고통을 무릅쓰고 죽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희망을 품고 하나님의 크나큰 자비를 느끼면서 가는 사람은, 그런 새로운 출발이 될 때는 거기에서부터 향기를 풍길 수 있는…. 내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에 비약과 초월을 못 했더라도 그런 자신의 새로운 생명의 귀결점을 가짐으로써 도약 아니면 초월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초월한다는 것은 다 넘어선 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