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조국이여 밝아오라 1971년 10월 09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97 Search Speeches

조국의 새아침을 맞이하려면 고난의 밤을 통과해야

통일교회는 나라보다도 먼저 백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민족을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런데 민족을 볼 때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민족이 나뉘어 있으면 주권이 있다고 하더라도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할 수 있는 주권이 못 됩니다. 일방적인 주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남북한을 능가할 수 있는 민족적 정신기준을 어떻게 일원화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금후의 통일교회가 힘써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조국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조국이란 이름이 나왔다 하더라도 상처를 입은 조국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권위와 신념을 가지고 만든 조국이 아니라 갖은 상처를 입고 수치를 당하는 조국일 것입니다. 그런 조국은 맞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통일교회의 젊은이나 혹은 뜻 있는 사람이라면 통일교회의 발전보다도,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가 흥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망하더라도 통일교회가 바라는 나라는 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 다 발전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통일교회가 희생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마음과 소망을 가진 여러분이라 할진대, 조국이 밝아 오는 데는 어떻게 밝아 와야 할 것이냐? 해가 지는 황혼이나 밤중을 즐거이 맞을 수 있는 마음이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점점 다가오는 세계적인 종말시대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여기서 암담함을 느낄 것이 아니라 `올 수 있는 현실이 왔다. 밤아 오너라, 밤이 오면 나는 달려간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밤을 피해 가는 것보다는 `찬란하게 밝아 올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밤중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저녁의 황혼이 있으면 또한 새벽 미명도 오나니, 그 과정에는 틀림없이 칠흑 같은 자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때입니다. 모든 것이 정지되는 때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거동하기를 싫어하는 때인 것입니다.

그때에 권위를 가지고 힘찬 거동을 하려면 자정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넘어서 새로운 날의 한 시, 두 시, 세 시, 네 시를 향하여 힘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가고 가면 기필코 어둠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절망이 아니라 가면 갈수록 보람 있는 희망을 갖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새벽닭이 우는 것은 아침이 찾아올 것을 예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침의 여명이, 칠흑같이 깜깜한 어두움과 밝음이 교차되는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 경지가 오면 남모르는 가운데 환희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햇빛만을 바라보고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할 수 있게끔 긴 밤을 새워 가면서 광명한 새 아침이 우리 앞에 찾아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햇빛을 보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가지고 그런 시간을 다짐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신음하는 도수가 크면 클수록 광명한 아침 햇빛을 맞는 감회는 드높아질 것입니다. 그 크기에 따라 가치는 비례되는 것입니다. 또 그 과정이 힘들었으면 힘들었을수록 아침 햇빛을 바라볼 때 더 큰 함성을 지를 것입니다.

그 아침 햇빛을 맞기 전에 추운 겨울밤을 지냈고, 자기 스스로 넘기 어려운 수난길에 부딪쳤으면 부딪쳤을수록, 그 도수가 크면 클수록 비례적으로 새 아침의 광명을 맞는 기쁨도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에 없었던 광명한 새 아침을 맞는 데 있어서 `여명이여 밝아 오라'고, `조국의 새아침이여 나타나라'고 하며 바라던 입장에서 광명한 새 아침을 맞게 된다면 그는 누구보다도 보람 있게 그런 아침을 맞는 첫번째 기수가 되어서 최고의 기쁨을 다짐할 수 있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그로 말미암아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민족과 국가의 전통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것을 서러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대열에서 고립되고 말 것입니다.

`조국이여 밝아 오라'는 표제를 두고 볼 때, 그 조국이 밝아 오기 전에 조국을 위한 수난길을 내 생애의 고빗길로 알고, 생명을 바칠 각오를 다지면서 그 수난의 길을 당연한 것으로 소화시키고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당하는 어려움이 가중되면 가중될수록 자기 자신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그 자체는 소모되더라도 자신의 가치는 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게 될 때는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새로운 광명의 아침, 새로운 국가를 맞이하여 거기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역사과정에서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던 절정감을 누려야 할 것이 아니냐? 절정감을 누리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바라셨던 기준과 일치하게 될 때, 거기서부터 비로소 천지에 새로운 역사의 전통과 새로운 국가 형성의 출발이 시작될 것이 아니냐? 그것이 내 생애에서는 조국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국의 국가 주권을 중심삼고 본향을 찾아갈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하늘땅에 자랑할 수 있는 권위가 나타날 수 있는 한 날을 맞기 전에 조국은 밝아 올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