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신앙자의 자세 1971년 04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3 Search Speeches

동정을 남기" 신앙생활

신앙길에 있어서 한번 잘못하는 날에는 그것을 바로잡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렇지요?

신앙자로서 생각할 수 없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했으면, 죄를 지었으면 뻔뻔스럽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런 기도 못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는 일이 있으면 기도가 안 돼요. 아버지라는 말을 하기가 너무나 부끄러워요. 아버지라고 부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알아요? 그저 철부지같이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사랑하는 아버지…' 하는 것은 떠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워해야 됩니다. 자기의 동지를 만나도 예절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이 앞서야 돼요. 하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다고, 아버지 앞에 서기에 부끄럽다고, 자기 자세를 갖추고 또 갖추는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자식이라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아버지의 사정을 생각하고, 세상이 악하니만큼 이런 나를 필요로 하시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동정의 마음을 유발시켜 가지고 아버지를 불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버지라는 말만 하게 되어도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래야 회개를 해도 그 회개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죄 짓는 것이 당연하고, 하나님은 용서해 주시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닙니다.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좋은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단장하여 어엿한 신부 차림으로 가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옷을 빌려 입거나 혹은 꿰맨 옷을 입고 갔다고 해보세요. 옷을 장만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어요? 여러분은 그와 같이 얼굴을 들 수 없는 한때를 당해 봐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느껴 봤어요? 생사 문제를 중심삼은 결정적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 그 이상의 길을 달려가는 데 있어서 그 이상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데서부터 보다 깊은 신앙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길에 있어서 빚진 자와 같이 처신해야 됩니다. 부끄러움을 가지고 부끄러운 자의 참다운 친구가 되어 주고 부끄러워하는 자를 감싸 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우리 대신 그런 입장에 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런 자리에 서 보아야 예수님의 고마움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선생님이 고마운 분이란 것도 알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뭘 느낍니까? 여러분들은 옛날의 그 모양 그 습관을 가지고 언제나 들락날락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기 본부의 물건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뭐예요? 요전에는 또 일본 식구의 물건이 없어졌다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회개의 심정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악의 분별 노정을 모르니 그 꼴이라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한 그 부끄러움을 바로잡기 위해서 몸부림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 본연의 자세인데도 불구하고, 남의 물건에 허락도 없이 손을 대어 제 욕심을 채우면 그건 화약고보다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미친 짓이 있어야 되겠느냐 그거야. 그 참 나, 연구 자료라구. 그것을 가져다가 뭘 하겠다는 거예요? 또 시계를 주웠으면 주인을 찾아서 돌려줘야지. 그런 사람이 커 가지고 뭐가 되겠어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신앙자는 빚진 자의 자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침묵이 흐르는 것입니다. 언제나 침묵이 흐르는 거예요.

내가 공석에서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참 많이 합니다. 이 4월 달에는 젊은 식구들을 대해 가지고 말했는데 내가 더 힘들었습니다. 말할 때까지는 오랜 침묵 기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돼요.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 전에 침묵의 기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러분이 알아야 돼요.

무아의 수도의 길을 가는 사람은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열 번 이상을 생각합니다. 그런 자리로 자기를 몰아넣습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들은 아주 잘해요. 말은 남의 말을 하고 행동은 남의 행동을 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나는 다 됐다'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신앙자의 자세는 빚진 자의 자세라는 것을.

자기의 신앙생활에 동정을 남기고 가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끝장이 나는 거예요. 지금 선생님 자신도 그렇습니다. 나 자신이 물론 공적인 입장에서 어디를 갔다가 예배 시간에 늦게 되면 나오기 전에 기도합니다. 또 어떤 주일에는 예배 시간이 됐는데 못 가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반드시 회개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주체적 책임을 짊어진 자로서 그래도 식구들이 나를 걸고 복받겠다고 하고 생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성들이고 있는데, 그 시간에 가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