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1959년 12월 0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0 Search Speeches

인류가 해야 할 최후의 일

그러면 최후의 날, 끝날이라고 하는 이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청산할 곳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아, 내 앞에 나타나 네 권한을 자랑해 보아라, 나하고 싸우자'하며 일시에 쳐버릴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몸이 머물수 있어요. 이 몸뚱이가 하늘 땅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이념에 사무쳐 마음 앞에 굴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인류가 가진 근본적인 심정이 통할 수 있는 변치 않는 심정의 한 핵심이 벌어져야 사탄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갑니다. 보따리를 싸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정적인 출발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연의 심정은 하늘에 있고 혈통은 사탄 것이기 때문에, 이 사탄의 혈통을 끊기 위해 하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디 가서 귀결될 것인가. 심정에 들어가서 귀결됩니다. 이념이 최고로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이뇨. 이념을 세운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나가야 할 최후의 판가리 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가련합니다. 6천년 동안 싸워나왔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불쌍하십니다. 6천년 동안 한 몸뚱이를 찾아 나오셨으나 하나님의 심정을 넘어선 몸뚱이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불쌍해요. 이념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셨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이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가 요 모양 요 꼴입니다.

이념과 우리 몸뚱이와 만물이 하나님의 심정에 접붙여져 가지고 정리되는 그 순간에 본연의 위치는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질을 바라볼 때, '역사적인 수많은 선한 사람들의 피를 농락한 이 물질아'하며 원통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볼 때는 '하늘의 신음을 자아낸 이 몸뚱이야'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볼 때는 '하나님의 심정을 외면한 마음아'하는 한스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지금이 그래야 할 때입니다. 이럴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최후의 목적지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 할진대, 어떤 이념권내에 들어간다고 할 때에는 물질도 문제될 수 없고 죽는 것도 문제될 수 없다고 하는 이념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참이념인 것입니다. 어떠한 이상주의가 있다 할진대, 그 주의를 위해서라면 '물질이 문제가 아니요, 억천만 금은보화가 문제가 아니다. 이 몸뚱이 하나 죽은 것쯤은 문제도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주의라야 합니다.

그 이념 때문에 죽는다고 해서 억울해 하고 분해 할 것이 아니라 기뻐하면서 '당연히 그래야지' 할 수 있는 이념, 이러한 이념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해요.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붙든 순간에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를 붙들고 가는 길에서는 죽음도 개의치 않습니다. 문제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워 놓으신 이상은 양심의 이념입니다. 이제는 이 양심의 이념을 넘어서 심정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하시고 양심의 다리를 놓아가지고 심정의 세계에까지 연결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끝날은 어떤 때이뇨?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인간의 심정이 연결되는 때입니다. 그러니 온 세계 인류는 예수의 심정에 접붙여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께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는 너희의 신랑이요 너희는 나의 신부다' 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신부를 찾는 때에는 그것이 세계의 그 어떤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념은 세계를 품기 위한 것이로되 심정은 하나님과 전체를 품기 위한 것입니다. 이념이라는 것은 대상세계를 품기 위한 것이요 심정은 주체와 대상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정세계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도를 종결짓고 넘어가야 됩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아 논리적인 추리를 하여 보면 반드시 그래야 되는데, 그러한 입장에서 전체를 대표하여 나타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에 한 단계 다시 혁명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양심적인 이념의 기준에서만 허덕인다면 망합니다. 깨져나가요.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심정을 표방하고 움직이지 못하면 오늘날 민주진영이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면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 앞에 전체가 자녀요, 전체가 신랑 신부요, 전체가 형제자매입니다. 그러한 권내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식구라는 명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한 식구에게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 가치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어떠한 주의나 금은보화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 그리워서 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가치를 알고 그리워하며 살 수 있는 동산을 만들기 위해 수고해 오셨는데 이것이 6천년 복귀역사입니다.

우리는 탄식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만물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몸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마음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만을 대할 수 있는 심정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는 주셨는데 우리가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려 왔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선의 물질을 회복해야 되겠고, 선의 이념을 회복해야 되겠고, 선의 심정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해야 할 최후의 일인 것입니다. 역사는 선의 물질, 선의 이념, 선의 심정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찢기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그곳으로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