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집: 효자의 길 1972년 09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8 Search Speeches

당당한 효자의 길

지금까지 선생님이 하고자 했던 게 뭐냐? 효자의 길이었습니다. 효자의 갈 길이었습니다. 부모가 잠을 자더라도 효자는 잠을 못 자는 것입니다. 잠자고 나서는 죄인같이 회개하는 생활을 한 거라구요. 먹고 나서도 미안해서 눈치를 보는 사람입니다. 입고 나서도 사람들이 보는 데서는 허리를 못 펴고 다닙니다. 내가 타고 다니는 차. '링컨' 하게 되면 세계에서 유명한 차라구요. 내가 그 차를 타고 수택리 골목에 들어갈 때는 숨어서 들어갑니다. 남들 같으면 자랑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그래요.

그런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그저 뭐 뭐…. 지금 가격으로 치면 그 차는 한 3천만 원 나간다구요. 3천만 원 가지고 우리 통일교회를 지으면 30개. 백만 원씩만 주면 못해도 30개는 지을 수 있다구요. 그런 차를 통일교회 문선생이 척 타고 다닌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걸 도둑질한 것도 아니예요. 이렇게 지금 대한민국이 부패되고 있지만 도둑질해 온 것도 아니예요. 그것은 외국 식구들이 보내준 것입니다. 그것도 안 타고 다니려고 그러는 거예요. 크라운 차를 타고 다니려고 한다구요. 그런데 크라운 차는 협회에서 타겠다고 말이예요. 큰 차를 두고 조그마한 차를 타고 다니려니까…. 그래서 이 차를 타지 않으면 안 되겠으니 할 수 없이 링컨차를 타고 다니는 거라구요. 그렇다고 해서 양심에 가책이 있는 게 아닙니다. 또, 그렇다고 자랑하며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구요. 한국 사람. 여러분이 팔자고 하면 당장이라도 파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우리 협회장으로부터 간부들이 전부 다 '선생님! 저 차 팝시다' 하면 파는 거라구요. 그 대신 팔았다가는 외국 사람들한테 모가지가 걸린다 이거예요. 팔아먹었다 할 때는 한국이 어떻게 되느냐? 앞으로 한국 통일교회 본부에는 외국 식구들이 절대 안 도와줍니다. 팔아먹으면…. (웃음) 그래서 팔 수 있나요? 팔지도 못하고…. 그렇다는 거라구요. 또, 안 타도 걱정이라구요. 선생님이 그 차 타고 다니나, 어쩌나 보는 거예요. 안 타고 다니면 '왜 안타고 다니나? 기분 나빠서 그러나? 한다구요. 내가 그런 입장에서 다닌다구요.

결국은 뭐냐 하면 효자의 길, 효자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이냐? 이걸 보면 선생님은 미친 사람이라구요. 부모를 알아봤나, 처자를 알아 봤나, 형제를 돌아봤나, 친척을 알아봤나, 나라를 알아봤나…. 내가 나라를 안 알아 준 것이 아닙니다. 더 차원 높은 입장에서 나라를 위해서 가려니…. 내가 나라를 위해서 왜정 때 눈물을 흘린 것은…. 애국자에 지지 않는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지금도 흑석동 길이…. 지금은 용산까지 길이 나 있지만 아쉬운 감이 나요. 그때는 포플라도 있고 플라타너스도 있었는데. 그때 다니던 인상이 남아지는 거예요. 저기 저 저 명수대, 노들강…. 그때는 왜정 때라구. 그때 눈물 흘리고 나라 위해 기도 많이 했다구. 일본 갈 때도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고 부산서 배 타고 갔는데. 사나이 떠나는 길이 이렇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항구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고….

그리고 별의별 수난과 고문을 받으면서도 동지를 한 분 더 구하기 위해 입을 안 연 사람입니다. 이런 전부가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예요. 남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살아 나온 내가 지금에 와서 통일교회 문선생 해 가지고 자리를 잡아 가지고 편안히 살자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교수협의회에서 교수들과 학생 100명을 일본에 데리고 가는 데 거기에 드는 비용만 하더라도 수천만 원이 들어갔어요. 그렇다고 통일교회 문선생이 먹고 남은 돈이 아닙니다. 피를 팔아 가지고 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것을 생각하면 통일교회 교인들 앞에는 내가 면목이 없다구요. 그렇지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