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1959년 12월 1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72 Search Speeches

인간의 창조목적과 타락

그러면 역사적인 종말에 처한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가져야 할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무엇을 가질 것인고. 어떤 사상가들은 세계를 갖겠다고 야단들이며, 어떤 종파주의자들은 그 종주(宗主)가 되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질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세의 모든 것은 우리가 목적하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목적한 것을 가지려면 현재 가진 것을 다 잃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시기를 만들어 놓으시고 하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우리만이라도 아버님과 함께 있자'는 제목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때에 이러한 처지에 있는 오늘날 우리 개개인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하늘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끝날에 처하여 갈팡질팡하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하늘과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한히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늘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천지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에덴의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하여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는 지음받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할 아담 해와 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을 의지하여야 할 만물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이념권내에서 영원히 동고동락(同苦同樂)하여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는가. 타락하였기 때문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어떠한 기준에 두고 싶어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본연의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슬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불행 가운데 두고자 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터로, 하나님의 마음의 자리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일터요, 마음의 집이요,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 또한 선한 연고로 아담 해와가 움직이던 그 생활환경도 선해야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창조 당시 하나님의 목적이요 이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일터가 되지 못하고 마음의 집이 되지 못하고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만상과 화동(和動)하여 기쁨과 영광, 자유와 행복의 동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무한한 기쁨의 세계, 무한한 행복의 동산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었는데, 아직까지 행복과 기쁨이라는 명사를 어느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슬픔을 느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행복스럽다 해도 그것은 사탄 세계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세우고자 하시는 것은 영원한 참인 연고로 그 세계에서 그리는 사랑, 그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인간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감정도 잃어버렸으며 그런 사정도 모르는 연고로 타락한 사실을 두고 슬퍼했을지 모르지만, 하늘은 타락한 인간을 놓고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잃어버린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잃어버린 억울함을 품은 하늘이예요. 분하다면 이 이상 더 분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