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소명을 따라서 1971년 01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9 Search Speeches

남을 위해 살라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에 여러분은 될 수 있으면 신앙노정에서 상심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상심을 하게 되면 손해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상심하게 되면 아무리 꿈이 크고 좋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멀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은 소명받고 가는 데 있어서 잼대를 가지고 전후 좌우를 가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겠으면 여러분들은 언제나 기도하며 정성들여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진실되고 겸손한 자리에서 '나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하게 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하면서 전체를 모시며 나가는 자리에는 발전이 있으면 있지 타락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여러분에게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을 표방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여러분은 끝까지 식구들을 위하고 전체를 위해서 나가야 됩니다. 그렇게 나가게 될 때는 그 정상적인 때를 맞아 가지고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언제나 자기도 모르게 탕감적인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의 결과에 대해서 세 번까지는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세 번까지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올래야 나올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우리 통일교인 가운데서 오래 된 사람들이 병이 난다든가, 혹은 다른 어떤 문제에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될 때 '저 사람이 저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쓱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말을 해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희생했는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자기의 재산 다 팔아먹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고 원망하는 조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탕감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의 아들딸에게서 탕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탕감이 없으면 아들딸들이 개구장이로 태어나 가지고 자기 속을 태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타격이라든가, 그 다음엔 심정을 중심삼고 남편이나 아들딸에 대한 문제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다 틀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 받게 될 때는 자기 몸에 대한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복귀역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물질에 대한 제물시대이고, 신약시대는 아들딸에 대한 제물시대이며, 성약시대는 부모에 대한 제물시대입니다. 이런 3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뜻 앞에 불림을 받은 사람이 책임을 못 하게 될 때에는 제일 먼저 물질에 대한 탕감을 받는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현재 다 어렵게 사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어렵게 사는 생활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뜻을 위해서 더 어렵게 살려고 해야 됩니다. 그러면 생활이 펴온다는 것입니다.

탕감복귀 원칙에는 용서가 없는 것입니다. 어렵게 산다고 해서 그것을 붙들고 암만 바둥바둥거려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이 이상 더 어렵게 살더라도 뜻을 위해서 살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가게 되면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못하고 그러한 문제를 중심삼고 해결하려고 하다가는 그 문제에 붙들려 뜻도 다 놓쳐 버리게 되고, 자기 선조들이 쌓아 놓은 공적까지도 전부 다 팔아 먹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질에 대한 문제나 자식에 대한 문제, 그리고 자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다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년간 신앙 생활을 해 나가게 되면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잘못 했어도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해서 열만큼 책망을 했다 할 때는 그 사람에게 3배 이상의 축복을 해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생활을 하지 않고 자기 신앙의 위치를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생활인가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