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전도자의 사명과 하늘의 심정 1971년 11월 08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59 Search Speeches

어떤 사람을 척 대해 좋은 느낌이 "" 이유

사람들을 보게 되면 개개의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척 대하면 공연히 좋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 대하는데도 마음이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것은 그 사람이 자기보다도 심령 기준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선조들이 닦아 준 기준보다도 높은 기준에 있게 될 때는 자연히 무엇인지 모르게 척 대하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람과 내가 인연이 맺어지게 된다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덕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좋고 나쁘다는 것은 어디서 좌우되느냐 하면 그와 관계를 맺어 내가 손해를 보느냐, 이익을 보느냐 하는 문제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나쁜 것은 다 싫어하고 좋은 것은 다 좋아하는 거라구요.

또 사람들 가운데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구요. 그 다음에는 대하면 괜히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돼 있다는 거예요. 대하면 좋은 사람이 있고,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무엇인지 모르게 그냥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이 드는 것은 상대가 무슨 전파와 같은 파장으로써 무엇인가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이 분석을 잘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을 척 보아 좋다는 것은,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면 벌써 그가 주체가 되어 가지고 나는 대상적 입장에서 그와 주고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리를 중심 삼고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완전한 상대기준을 세워 가지고 완전한 상대기대를 이루어서 완전히 주고받으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을 대해 가지고 좋다 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환경에 있을지라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그에게 아니 줄래야 아니 줄 수 없고, 그로부터 아니 받을래야 아니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강한 지남석과 철이 있으면, 철이 지남석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 그래요? 영향을 받게 되면 반드시 철 자체가 끌려가는 것입니다. 끌려간다는 거예요. 그와 같은 작용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 둘 사이에는 무엇인지 모르게 오가는 인연이 맺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고받는 그 인연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은 거기에 임재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주고받는 힘에 해당하는 만큼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그려 가면서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주고받게 되면 운동이 벌어져요. 운동이 벌어지면 반드시 중심을 추구하면서 운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심이 빨리 결정되면 그것이 오래 계속되지만 오랫동안 중심이 결정되지 않고 주고받는 것보다 늦게 중심이 결정되면 빨리 쓰러지는 거라구요. 이렇게 되어 있다구요.

이렇게 주고받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임한다, 중심이 결정된다는 것을 우리가 원리를 배워 알고 있기 때문에, 척 대하면 벌써 거기서부터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기분이 좋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반드시 인연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서로 처음 만났지만, 여러분은 지금 박씨라든가, 김씨라든가, 최씨라든가, 조씨라든가, 문씨라든가 각 성씨들로 헤쳐져 있지만, 여러분 선조 끼리끼리는 인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 할아버지라든가 할머니들을 조사해 보면, 조씨 할머니가 있었는가 하면 김씨 할머니가 있었고, 이렇게 시집왔던 할머니들을 전부 다 살펴보면, 수많은 성씨가 접근되었다가 떨어지고 또 접근되었다가 떨어졌다는 거예요. 최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또 김씨 할머니가 왔다가 돌아가고, 이렇게 선조들을 쭉 살펴 올라가 보면, 한 할아버지로부터 지금의 아버지대까지 내려오는 데에는 수많은 씨족들이 붙었다떨어졌다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또 한 세상 살다가는 가고, 이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내려오는데, 비례로 보면 자기의 종족이나 씨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어떠한 특정한 씨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할머니들 가운데 어떤 성씨를 가진 할머니들이 많으냐? 김씨가 많으냐, 박씨가 많으냐, 최씨가 많으냐, 조씨가 많으냐? 여러분들은 모르지만 인연된 성씨가 있습니다, 안 그렇겠어요? 인연된 성씨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1, 2, 3, 4, 5… 이렇게 등수로 매기면 나를 중심삼고 수십 등의 등차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한 몸이 이 시대에 아무개의 아들딸로 태어났지만, '나' 라는 것은 이 시대에 평면적으로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구요. 여러분 자체에는 수많은 선조들, 즉 수많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피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한 4백조가 되는 여러분의 세포는 여러분 선조들의 세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있어서 여러분이 어떠한 성씨의 소성을, 어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성을 많이 받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보더라도 그 할아버지가 조씨라면 순 조씨 계통의 할아버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의 어머니가 박씨라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박씨의 소성을 닮아 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이렇게 지그재그로 섞여 가지고 전부 종합되어 가지고, 오늘의 '나'라는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을 대했는데, 박씨면 박씨를 처음 만났는데도 괜히 좋다…. 그거 왜 괜히 좋은가 하면, 자기 선조들 중에 박씨 할머니가 많았기 때문이예요. 박씨 혈통의 인연을 많이 갖게 되면 자연히 좋아진다는 거예요. 그러한 인연이 전부 다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