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집: 해원성사 1971년 01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93 Search Speeches

예수님을 성혼시켜 "리지 못한 마리아와 "셉

자, 예수님이 죽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까? 살기 위해 왔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총각이예요, 아저씨예요?「총각입니다」 또 예수님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다」 선생님이 눈을 부릅뜨고 `예수님은 중성이다'라고 큰소리쳐도 여러분의 마음속으로는 전부다 예수님은 남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지요? 「예」 예수님은 분명히 남자입니다.

그럼 남자인데 감각이나 감정이 모두 이그러지고 찌그러진 무감각적인 남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감각적입니다. 안테나로 말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안테나 챔피언입니다. 그러니까 안테나가 예민하여 원거리 소식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남자이니만큼 남자의 감정이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있었습니다」 그러면 장가도 가고 싶었겠어요, 안 가고 싶었겠어요? 「가고 싶었습니다」 오늘날 기성교회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장가가야 한다고 말하면 기절하여 나가자빠질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에게 `당신은 천년 만년 독신으로 살다 죽을지어다'라고 축복하겠다고 해보십시오. 그랬다가는 예수님이 `야 이녀석아' 하며 주먹으로 칠 것입니다. 한번 물어 보자구요. 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치겠습니다」 치게 마련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장가가고 싶었을까요, 안 가고 싶었을까요? 「가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이 되어 봤어요? 그저 `가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거예요.(웃음)

예수님이 장가를 간다고 한다면 어떤 색시를 얻겠어요? 이제부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미인을 얻겠습니까, 추녀를 얻겠습니까? 「미인을 얻을 겁니다」 미인 중에서도 왕족 미인이겠어요, 노동자 미인이겠어요? 「왕족 미인일 겁니다」 그 나라 주권자의 천하일색인 외딸을 색시로 얻겠다고 한다면 죄가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됩니다」 그러면 헤롯왕이나 대제사장 가야바의 맏딸이 예수님과 혼인잔치를 벌였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가야바가 예수님을 잡아 죽이자고 선동했겠어요, 살리자고 했겠어요? 대답해 보세요. 「살라자고 했을 겁니다」 햐, 내가 그때 있었으면 예수 장가 보낼거라.

그런데 예수님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처량했으면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 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 3:12)"라는 말을 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요? 그것은 낙망이요, 절망이요, 탄식이요, 하소연이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노총각이신 예수님 장가가라고 권했다면 기분이 나빴겠습니까, 좋았겠습니까? 「좋았을 것입니다」

자, 솔직히 얘기해 보자구요. 베드로, 야고보와 같은 12제자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보리개떡만 먹는다며 배고픈 타령만 했지, 예수님 장가 보내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연구하고, 결사적으로 중매하는 놀음은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그런 놀음을 했었다면 예수님이 그들을 미워했겠어요, 사랑했겠어요? 「사랑했겠습니다」 생각해 보라구요. 또 예수님의 중신아비가 됐으면 좋아요, 나빠요? 「좋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중신아비는 누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이 장가 갈 수 있는 상대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신아비를 원할 때 동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아니면 종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형님이 되는 것을 원하겠습니까? 정적인 면으로 보게 되면 이왕지사 될 바에야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됐으면 예수님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노총각을 자식으로 둔 부모는 자식을 장가보내기 위해서 전문적인 연구를 해야 됩니다. 자식의 허리띠를 붙들고 장가가라고 통사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한번이라도 그렇게 해봤습니까?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해요? 「안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부모의 책임을 다했습니까? 서른 살이 다 되도록 더벅머리 노총각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목수의 조수 노릇을 하던 예수님은 자신이 처량했겠어요, 신이 났겠어요? 처량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성경을 보게 되면 참 재미있습니다.

예수님은 3년 공생애노정을 왜 갔습니까?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나갔느냐는 것입니다. 병이 나서 나갔습니까? 기성교회에서는 여기에 얽혀 있는 내용도 모르면서 `예수님의 3년 공생애노정은 거룩할지어다'라고 말합니다. 하는 수작들은 좋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의 중심으로 세운 것이 유대교요, 유대교를 믿는 씨족 가운데 선민을 대표할 수 있는 씨족으로 세운 것이 요셉과 사가랴 가정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모시고, 적극적으로 후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택해 놓은 대표적 씨족이 요셉 일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모셨습니까? 해원성사라는, 천륜에 의한 사명과 뜻을 펼 수 있는 내정적인 인연을 예수님의 가슴에서 끌어내어 협조하기 위해 노력했느냐 할 때,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하나의 남성으로 왔기 때문에 역사적인 하나의 여성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 "일천 남자 중에서는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 7:2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한이 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하나의 여인을 찾을 때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뇨?'라고 결론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열매인 예수님이 혼인 잔치를 하기 위해서는 엉클어져 누더기 판이 된 역사시대의 모든 실패의 요인들을 바로잡아야 했습니다. 그 실패의 요인으로 생겨난 천사세계의 비운의 감옥인 지옥을 해원성사해야 하는 구세주의 책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예수님의 역사적인 사정을 꿈에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더우기 예수님이 그릇된 역사적인 허물을 바로잡아 가지고, 그 기대 위에서 하나의 신부를 맞게 되기를 바라고 소원했던 제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