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집: 서울 교역자의 책임 1989년 01월 17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271 Search Speeches

하늘의 뜻이 가" 길과 사람이 가야 할 길

그것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러분 심정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정생활도. 정성들여 기도해서 이것이 수직으로 되어 가지고 쭉 이렇게 은혜 될 수 있게 되면, 은혜 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그것이 꽉차게 되면 그것이 쭉 좌우로 뻗어 나온다구요. 가지가 뻗어 나와요. 가지가 뻗는 데 아무데서나 안 나옵니다. 수직에서만 나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수직에서. 이게 커지면 가운데가 제일 크지요? 운동해서 불러 나오게 될 때는 이 수직의 가운데가 커진다는 겁니다. 가운데서부터 불러지기 시작한다 그 말이라구요. 이론이 그렇잖아요? 둥그래지는 게 여기 가운데 중심삼고 제일 커지니까 처음부터 작용이 여기서 벌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게 되면, 전부 다 강력한 기도를 하게 되면 몸이 감동받는 겁니다. 감루(感淚)를 흘리게 되는 겁니다. 그 은혜의 수직적인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감화를 받는 것이라구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가치, 내가 어떤 존재냐 하는 그것을 아는 겁니다. 종적 기준만 가지고는 자기 가치를 몰라요. 횡적 기준만 가지고도…. 말만 가지고는 그 사람을 모르잖아요, 행동이 같아야지요? 언행심사(言行心事) 아니예요? 언행이 같아야 되고, 마음과 일이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종횡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몰랐지요.

그래 유교사상 같은 것 다 그렇잖아요.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천도지상(天道之常)이요…. 천도지상이 뭐예요? 하늘의 뜻이 가는 그런 길이다 이겁니다. 어떤 것이 길이예요?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인성지강(人性之綱)이라 하는데, 인(仁)과 의(義)를 행하는 것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이다 이겁니다. 그게 뭐예요? 이 둘이 맞아야 돼요. 하늘을 빼놓고도 안 되고 인의예지를 빼 가지고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걸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天)이 막연한 천이 되었고, 인의 예지가 막연했다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를 몰라요. 모르니까 이 두 세계 형태는 역사에 있어서 그 실체적 기준을 형성 못 하고 흘러가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돼요.

우리 원리를 중심삼은 것이 이성성상으로 나와 가지고 어떻게 되어 나와 관계를 맺었고, 사회의 어떤 형태를 중심삼고 실체권을 남기고 있느냐 이겁니다. 재창조의 실체권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무엇이냐?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요, 돈도 아닙니다. 사랑의 실적을 바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스승간에 사제지애(師弟之愛), 부자지애(父子之愛), 전부 다 애(愛)가 아니예요? 군신지애(君臣之愛)…. 하늘도 아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천자지애(天子之愛), 혼자는 안 되게 되어 있다구요,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명을 귀하게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생명을 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기를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습니다. 결정적 논리를 그어 놓은 겁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죽고자 했어요? 많은 사람들, 죽기를 각오하고 생명을 걸고 천명을 구해 주면 천명의 구도자가 되는 겁니다. 노라리가락으로 뒤에서 구조할 때 있는 밧줄을 옮겨 주는 건 구도가 아닙니다. 자기가 밧줄로부터 모든 것을 만들어 가지고 주도적 역할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를 할 때도 결사적이어야 합니다. 결사적이어야 한다구요. 그러니까 땀을 흘려야 되고 눈물을 흘려야 돼요. 피땀을 투입해야 돼요. 정성 아니면 안 돼요. 생명의 말씀인데 생명과 하나돼야 되는 게 아니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 된다구요. 여러분의 몸 마음이 하나되어 가지고 수직적 각도에서 90각도를 못 맞추게 되면 그 사람은 가면 갈수록 희미해지는 겁니다. 벗어나는 겁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것 같지만 맞지 않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해도 주체와 대상이 완전히 주고받으면 그건 우주가 보호한다는 겁니다. 참사랑을 중심삼고 인연맺으면 일생 동안 잊지 못해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이겁니다. 돈 주고 무슨 지식 같은 것, 권력 같은 것을 혜택받게 해준 것은 잊어버리지만 참사랑은 잊지 못해요. 세포의 근원이, 세포의 축이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 있는데 그 세포 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 취소시킬 수 있는 세포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걸 감수하고 느낄 수 있는 세포, 환경적 부체 세포는 있을 수 있으되, 그걸 부정하고 격리된 자리의 세포 부체는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거 딱 되어 있어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걸 함부로 얘기 안 해요, 상대가 없으면. 벌써 여기에 상대가 있으면 자연히 말 한마디 하려면 벌써 말이 나간다구요. 완전한 주체는 완전한 마이너스를 창조하는 게 아니예요? 수평선이라 하는 것은 수직선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요? 왼쪽이라 하는 것은 벌써 오른쪽을 선임적 조건으로 하고 하는 말입니다. 위라는 것은 이미 아래를 결정하고 하는 말입니다. 위를 먼저 결정한 것이 아니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위하는 철학논리가 맞는다는 겁니다. 아래 것도 위를 위하고, 위를 먼저 생각하면서 아래가 생겨났습니다. 아래를 생각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위 것이 아래를 생각하면서 생겨났고, 바른쪽은 왼쪽을 생각하면서 생겨났다 이겁니다. 기원이 어디냐? 바른쪽이 먼저가 아니라구요. 왼쪽을 생각하면서 태어났으니 왼쪽이 먼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