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하늘편에 서자 1968년 06월 0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4 Search Speeches

내 위신과 권세를 자'하지 말라

아담 해와가 자랄 때에 하고 싶고, 바라던 모든 것을 다 해주지 못한 것이 부모이신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 마음이 있기에 복귀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식으로서 하나님 앞에 효의 도리를 세우고 천륜의 법도를 세워 정착점을 마련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것을 하지 못 했습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태어난 오늘의 인간이기 때문에 탄식과 저주와 불만의 비탄 가운데서 신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공적인 터전을 중심삼고 하늘편에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오늘의 내 위신과 권세를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뼛골 사이에서 스며 나오는 타락 전의 본연의 정, 즉 본성의 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타락했던 조상의 입장에 서서는 안 됩니다. 때문에 타락한 부모들은 울어야 되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그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들도 당연히 고생해야 됩니다. 비참해져야 됩니다. 죽어 나자빠져야 됩니다. 쓰러져야 됩니다. 억울한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것은 당연지사입니다. 내 뼛골 깊이 숨겨져 있는 본성의 정을 중심삼고, 타락 전 즐거워하시던 아버지를 동경하면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마음에 준 그 상처를 부여안고,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심정을 가지고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과 인연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종교에서는 죽을 때까지 정성을 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도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타락권내에 떨어진, 하나님의 저주권내에서 태어난 인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뼛골 사이에 있는 본성의 심정을 유발시켜 가지고 인간을 사랑하고 싶으셨던 그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셨겠느냐는 사실을 아는 자리, 그러한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정성들이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느끼기 위해 몸부림 칠 때라야만이 하나님과 나와의 인연이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동기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라 했더니 오늘은 바쁜데, 어디 가야 할 텐데 하면서 다했습니다 라고 말하면 그것이 다한 것입니까? 그리고 장가가려 했는데 그만 둬야겠다, 시집가려 했는데 시집가서는 안 된다고 하니 그만둬야겠다 하며 돌아선다 해서 그것이 다한 것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한계점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럭저럭 산다고 해서 그것이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한계점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던 때의 심정의 기준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니 여러분들은 명령을 받고도 무책임한 자리에 서서는 안 되겠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삼고 아담 이상의 심각한 마음으로 생명을 걸고 내 모든 전체를 투입해야 합니다. 폭발하기 위해서 날아가는 폭탄같이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려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망선을 넘어 정성을 들이는 그 기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상 가운데서 천하 만민이 몽땅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을 노래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그 기준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억울하고 분하신 분이십니다. 그것은 누구 때문이냐? 바로 `나'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요? 내가 몇천년 전 조상하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다 썩어 가지고 보기 싫게 앙상한 가지만 남은 고목에 싹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은행나무는 느티나무든 그 싹에게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을 때, 금년 봄에 나왔으니 석달 되었다고 하면 되겠어요? 내 나이는 심으신 할아버지때부터 뿌리가 나기 시작했으니 몇이라 해야 되겠어요?

그 고목의 순과 같은 사람이 누구이겠어요?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몇살입니까? 열 다섯살, 스무살로 생각하지 말아요.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 나이에 6천년을 더해야 합니다. 6천년이 걸리적거리니까 그냥 열다섯살이니, 스무살이니 하는 것입니다. 6천년은 다 같으니까요. 사실은 몇살이냐고 하면 `6천 몇살' 그래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심정의 세계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