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전도자의 사명과 하늘의 심정 1971년 11월 08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88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인-맺기 위해 정성"인 것이 자신의 재산

심정적 인연을 통해서 타락이 된 것이기 때문에 타락의 문을 열어 제치려면 그것보다도 고차적인 심정적 힘을 가지지 않고는 못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원리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선생님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며 야단하게 되면 선생님이 쓱 나타나서 가르쳐 주는 일이 벌어집니다.

여러분이 길을 가다가 무슨 좋은 옷감이 있으면, 혹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붙들고 '아, 가슴이 아파서 떠날 수가 없구나. 이걸 우리 선생님께 갖다 드리고 싶다. 내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갖다 드리고 싶구나' 하는 마음이 우러나고, 온 몸이 노그라지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이 불쌍한 것을 느끼면서 눈물이 사무치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벌써 선생님이 그것이 양복이면 그보다 더 좋은 양복을 입고 좋은 넥타이를 매고 '허허' 웃으면서 나타나서 '왜 그러느냐?' 고 하는 장면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게 좋은 것이 다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이상한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든가 세계 각국 사람들이 선생님이 가기로 약속을 했으면 그리움이 고조되어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자다 말고 일어나서는 '선생님, 언제 오십니까?' 이러는 거예요. 그렇게 사무친 경지에 들어가면 영안이 열려 버립니다. 그래서 '보고 싶다 보고 싶다' 하게 되면 선생님이 '아 그러냐'고 해 가지고 에덴 동산도 데리고 가서 구경시켜 주고 그런다는 거예요. 그때 그 사람들은 그것이 영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그 길이 아니고는 그런 세계가 열리지 않아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눈이 뭉그러지고, 코가 메이도록 울면서 그리워해야 합니다. 사람이 너무 울면 여기가 막 아픕니다. 그만큼 사무치게 그리워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고 부르는 데 있어서도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요, 다른 먼 나라로 떠나는 아들의 입장에서 애절하게 아버지를 부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 아니냐.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는 그런 기준 이상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하나님과 인연맺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들였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