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가 1959년 1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4 Search Speeches

내가 가진 목적관은 올"른가

본래 이것들은 본연의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존재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들의 관념은 자신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자기 위주한 가정과 국가와 이 세계에서 모든 것을 종결짓고자 하는 그 관념은 틀려먹었습니다. 가정을 위하여 산다 해도 가정을 위해 사는 것만이 목적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는 것, 좋습니다. 위하여 사는 것, 또한 좋습니다. 그러나 위하고 있는 그 환경 자체가 위함을 받을 수 있는 궁극적인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리를 넘어 더 높은 곳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천륜은 이와 같이 자연적인 현상으로 여러분을 격려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하여 가라고 오늘 이 시간도 여러분의 마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있는 지성을 다하여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겠습니까? 내 일신(一身)의 사지백체(四肢百體)는 내 한 몸이 동기가 되어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깊이깊이 캐고 들어가면 역대의 선조로부터 나왔고, 더 들어가면 그 선조들의 기원이 되는 어떤 주인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이런 감정은 역사적인 감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이런 소망 역시 역사적인 소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슨 주의를 논위(論謂)하고 있지만, 그 주의는 이 시대에 비로소 나타난 주의가 아닙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알지 못하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본연의 심정세계, 즉 오늘의 세계 이상 가는 세계를 그리워 해왔습니다.

이제 역사와 더불어 소망하던 그 심정세계의 이념이 나타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정력을 기울이는데 있어서는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나 중심하고 위하는 것은 참된 목적이 될 수 없어요. 그것을 위하여 나의 전체를 투입하고 생명을 기울여서 희생할 만한 가치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동적으로 헤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심코 옮겨놓는 발걸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가고 있고, 누구를 위하여 움직이고 있고, 또 내가 위하는 그것은 어디 가서 가치를 나타낼 것인고. 그 움직임에서 내 한 자체가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느꼈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우주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사명을 종결지을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정신을 가다듬지 못할 정도로 내 마음을 기울이고 나의 모든 심혈을 기울여 그것을 위하여 움직인다 할지라도 내 자체가 그 움직임의 주동자는 못 되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위하여 움직인다고 할 때, 그 마음을 창조하는 참된 주체가 자신인 것 같아 보입니까? 그 주체적인 마음은 나에게 있는 것 같지만 나를 지나가고, 나에게 없는 것 같지만 나에게 통하여 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여러분을 매개로 하여 인연될 수 있는 환경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자신이 그 주체자가 못 되고, 그 어떤 내용을 종결지을 입장도 못 된다는 것을 생활환경에서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