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가야 할 예수의 노정 1971년 10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예수의 기막힌 사정을 알아야 되겠다

그러면 예수의 슬픔이 무엇이었느냐? 부활 후에 예수를 만난 것이 기뻤느냐? 기쁜 반면에 배후에는 슬픔이 개재되어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뜻은 죽고 난 후에 부활해서 제자들을 찾아가 가지고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반문을 바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구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남기기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했던고. 아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준비했던 터전은 산산조각으로 다 깨져 나가고…. 인종지말(人種之未) 이 일당들을 거느리고 소원을 다시 이루어 보겠다고, 수습해 보겠다고 결심했던 길 가운데서 배척받기 일쑤고, 몰려 죽은 예수가 무덤을 헤치고 다시 찾아와서 소원을 이루고자 했던 기막힌 사정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주인 되시는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가지고 사랑의 도리를 이어받겠다는 사람이 있을진대,'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이 너머에서 따라가겠소' 하게 되면 이것은 전부 다 배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넘어가야 됩니다.

하나님도 거부했다는 거예요.'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나님도 예수를 버렸어요, 왜 버렸느냐? 하나님이 예수를 보낸 것은 그렇게 죽으라고 보낸 것이냐? 하나님은 예수를 사랑했는데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못 가지고 죽기를 바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지 않느냐, 안 그렇겠어요? 죽기를 바랐다면 4천년 동안 유대교니 이스라엘 민족이니 하는 것을 준비할 필요가 뭐 있어요? 이방 나라에 태어나게 하면 대번에 죽을 것인데….

하나님도 기가 막혔다 이거예요. '내가 너를 보낼 때는 인간 세상 앞에 사랑받게 하기 위해서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해 가지고 돌아올 줄이야…' 하나님이 그걸 보고 좋다고 바라보시겠어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구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의 십자가는 다 잘라 버려야 돼요. 없애 버려야 됩니다. 십자가가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십자가가 생겨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않고는, 우리가 죽지 않고는…. 그런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한 길이예요.

억울하고 원통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 산정을 향하던 예수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활권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 누가 예수를 사랑했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사랑한 것은 어떠한 내용으로 사랑했을 것이냐를 볼 때, 하늘나라, 혹은 전세계의 구도자의 사명을 짊어진 메시아의 심정과 일체될 수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려고 했겠느냐?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입장에서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컸댔자 이스라엘 아무개 아무개 족속, 내 친척을 대표해서 예수를 모시고 싶다, 이 정도지, 교회를 대표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사랑한다는 마음은 못 가졌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대표한 자리에서 '예수를 이렇게 사모합니다. 사랑합니다' 못 했을 거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