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새롭게 출발하자 1968년 05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4 Search Speeches

천주주의를 "고 나온 통일교회

그래서 오늘날 통일교회에서는 천주주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주의가 벌써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부모가 죽었는데 손 하나를 잘라 바쳐서 그 부모가 다시 살아난다면 손을 잘라서 바칠 수 있겠습니까? 바칠 수 있다면 어디를 자르겠습니까? 왼손이요? 하고 자르기를 주저하는 사람은 불효자식입니다. 손가락 하나만 잘라 바치라 해도 `아, 왼손가락 이거요? 이만큼요?' 한단 말입니다. 자르는 것은 어디를 자르나 마찬가지이니, 이 손을 전부 힘줄까지 완전히 잘라서 바치란 말입니다. 그럴 수 있는 배포들을 가졌습니까? 쯧쯧, 그러니 믿은 사람들이 전부 껄렁패들입니다.

이 따위들이 세계적으로 뭉쳐서 시시하게 논다는 것입니다. 정통? 무엇이 정통이오! 이건 전부 때려 부셔야 합니다. 일시에 밀어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6천만 한의 심정을 억누르면서 복귀의 한 날을 고대하던 하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생각하게 될 때 참을 수 없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선의 세계인 천국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셨지만 한마디의 말씀도 못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을 알았지요?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뭐 사도들! 사도가 무슨 사도란 말입니까? 예수님이 죽게 될 때는 난 몰라 하던…. 그들은 전부 자기만을 생각하면서 뭐 주(主)의 나라에서 좌정승 우정승이 되기만을 바랬으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깡패의 세계에서도, 거지의 세계에서도 의를 갖고 생명을 내놓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하물며 하늘의 도와 의와 선을 중심삼고 무엇을 한다 하는 사람들이 그꼴이니 생각해 보면 분한 일입니다.

이 땅 위에 4천년 만에 비로소 인류의 참부모의 명분을 가지고 찾아왔던 분이 사탄의 몰림을 받고 돌아가시다니…. 최후에 돌아가실 때는 강도를 좌우편에 두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땅에 인연을 맺기 위해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할 수 없이 인연을 던지고 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참회한 오른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하셨으니 기가 막힌 사실입니다. 기가 막힌 사실이예요.

예수님은 한을 풀지 못하고 이처럼 서글픈 심정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될 예수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걸 모르는 터전 위에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생겼으니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이런 감정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무지한 기독교인들, 이 멍청이들! 무슨 박사? 뭐가 어떻고 어때? 박살을 당해야지!

잃어버린 참부모를 어디 가서 찾을 것입니까? 참부모가 나오지 않는 한 참다운 형제는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꿈이란 말입니다. 참부모 없이 참형제가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가짜입니다. 가짜예요. 참부모가 없는데 참형제가 있을 수 있습니까? 분명히 참형제 참자녀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참다운 부모가 나오기 전에는 참다운 사랑도 못 찾는 것이고, 참다운 생활도 할 수 없습니다. 참다운 부모가 없으면 참다운 행복의 나라도 세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바라신 이상적인 완전한 기준은 이 땅 위에서 참다운 선을 이어받은 참부모의 이름과 더불어 성립되는 것입니다. 그 참부모를 중심삼고 참다운 혈통의 인연을 맺은 자녀들이 있어야 비로소 그 기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자녀들만 있어서는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자녀인 주제에 무엇을 주고 다니고, 입고 다니고, 지고 다니고, 안고 다니니 아이고 꼴보기 좋군요, 꼴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