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신앙자의 자세 1971년 04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21 Search Speeches

통일교인이 해야 할 심정생활

어떤 때에는 밖에서 늦게 돌아오면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에는 아이들에 대해 '야, 너희들 얼마나 이 아빠를 불러 봤니?' 하고 물어 보고 싶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부르다가 피곤해 가지고 이렇게 자게 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구요.

어머니면 어머니에 대해서도 피곤하여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수고했으면…. 이런 마음이 듭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 수고를 알아주고도 남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통일교회 교인들을 놓고도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눈만 뜨면 지방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지방 가기가 바쁩니다. 애기를 보고 싶은 마음 이상 그들이 보고 싶어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보고 싶어하는 그 이상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나는 죄인입니다. 빚지는 자가 되는 겁니다. 저 나라에 갈 때에 하늘 공법 앞에 선조들 앞에서 참소를 받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으면 선조들 앞에 참소받을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참소받을 그런 길은 안 갑니다. 그래서 나가서 일하는 사람들도 선생님을 대해 가지고 욕을 하고 싶어도 욕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빚지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 신앙자의 자세는 망하지 않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보호하는 겁니다. 동정을 언제나 남기는 생활, 결론은 간단해요. 언제나 동정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걸어가는 꼴만 봐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왜 그러냐? 그럴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몇 번씩이나 동정해 주었는데도, 동정해 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정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 가든지 하나님이 동정하고 같이 느낄 수 있고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여러분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비록 악한 세계에 있더라도 악한 세계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슬픈 세계에 있더라도 슬픈 사람이 아닙니다. 또 여러분이 어디 가든지, 혼자 있더라도 묵묵히 혼자 있는 그 마음 세계에서는 하나님과 접할 수 있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는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로 이루어진 생활을 할 수 있는 세계와 연결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천국생활을 할 것이 아니냐? 이런 것을 여러분이 잘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서부터, 자신에서부터 사탄이 틈타지 않게 해야 되고, 사탄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없애야 됩니다. 그러한 자신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은 거기까지 가야 할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고 그것을 확대시키기 위한 격정의 도상에서 회피할 것이 아니라, 그 책임을 내가 지고 피해를 내가 입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죽음의 자리까지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쓰러질 수 있는 생애의 종착점이 어디냐? 대한민국이냐? 세계의 끝이냐? 자기 집안을 위해 죽을 것이냐, 객사하는 모습이 될 것이냐 하는 이런 것에 개의치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더 동정할 수 있고, 하나님의 큰 뜻이 깃들 수 있고, 또 그것을 남겨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개의치 않고 죽음을 각오하고 가는 사나이라면, 기필코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이것을 명심해야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