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참된 식구가 되자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33 Search Speeches

보다 좋고 귀하고 나은 것을 "라" 인생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태어나 가지고 생활을 하며 역사노정을 거쳐 이 시대까지 쭈욱 나왔습니다. 그들은 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 가정의 부모가 됐고, 남편이라든가 혹은 부인이 돼 가지고 자식을 낳아 하나의 가족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혹은 그 무엇을 위하여 산 그 사람들이 지금은 영계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땅 위에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 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이 현세를 바라보면 행복만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선만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또 대다수의 사람들이 좋다 하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선한 것보다는 악한 것이, 행복한 것보다는 불행한 것이 많은 이 세상이라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누구를 물론하고 이 세계보다도 더 새롭고 이 세계보다도 더 선하고 이 세계보다도 더 가치 있는 세계를 바라고 있는 것이요, 또 바랄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녹음이 잠시 끊김)

어느누구를 물론하고 그 마음속에서는 이것보다도 더 행복스럽고 이것보다도 더 자유스럽고 이것보다도 더 이상적이고 가치 있는 것을 찾아 헤맨다는 것을 볼 때에,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그 국가와 그 사회와 그 가정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 나, 이 자체들은 완전한 것이냐? 어때요? 완전한 것일 것이냐? 완전해요, 완전치 않아요? 「완전치 않습니다」 좀더 좋은 것, 좀더 귀한 것, 좀더 행복스러운 것, 좀더 평화스러운 것을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세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내 자신이 내 자신을 보장할 수 없고, 내 가정이 나를 영원히 보장할 수 없고, 내 부모가 나를 영원히 보장해 줄 수 없고, 이 국가도 역시 그렇고, 이 세계의 어떤 주의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적인 행복의 주체면 주체, 영원하신 이념의 주체면 주체, 혹은 절대적인 선의 주체면 주체가 나를 내 개인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사회·국가·세계 어디를 가든지 보장해 줄 수 있는 그런 한 분이 계셨으면, 그런 주인공이 계셨으면, 또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이 막연하게나마 바라는 소망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체들이 살고 있는 우리 집…. 여러분 우리 집이 있어요. 우리 가정, 그러면 과연 우리 집이 진정한 우리 집이냐? 고향 땅에 가면 여러분을 낳아 준 어머니 아버지가 있습니다. 내가 추울 때 입을 것을 주고, 배고플 때 먹을 것을 주고, 내가 무식할 때 배움의 길을 닦아 주신 그런 부모가 있어요. 또 내 주위환경에는 모든 것을 거들어 주는 형제가 있어요. 그런 형제를 갖고 있는 그런 가정에서 아들로 태어나고 딸로 태어났는데, 그 집이 과연 행복한 집이냐?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이것보다도 좀더 완전하고, 이것보다도 좀더 귀한 것, 영원히 나로 하여금 내 사랑하는 부모를 붙들고 그야말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고, 형제 품에 안기어 가지고 영원무궁토록 이것이 내 복지라고 찬양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갖지 못한 것을 볼 때에 오늘 만민은 불행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가정의 환경을 박차고 나서는 청소년들이 많은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는 자기 자식들을 대하여 효자 효녀가 되기를 바라고, 나라는 그 국민을 대하여 충신 열녀가 되기를 바라지만 효자 효녀의 길을 못 가고 있어요. 원칙으로는 가야 되겠지만 가지 못합니다. 충신 열녀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인생이 갈 길이지만 가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러냐? 우리 본래의 마음과 우리가 생활하는 이 사회환경이 배치되기 때문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한 면에서는 새로운 우리 집, 새로운 우리 나라, 새로운 세계, 새로운 그 무엇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로 달려 나가려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거예요.

오늘날 여러분 하나의 자신을 두고 볼 때, 가정이면 가정을 두고 볼 때, 한 쪽으로는 원치 않지만 한 쪽으로는 더 좋은 것을 바라면서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