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집: 참다운 자녀가 되려면 1966년 11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82 Search Speeches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가

우리는 부모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고, 자녀의 날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축복가정이 생겨난 것입니다. 36가정, 72가정, 124가정을 선생님이 축복해 주었습니다. 축복이란 것은 그냥 흘러가는 사람들을 모아서 해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지를 대표하는 입장에 세워 놓고 해준 것입니다.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효성의 도리를 다했다는 공인을 받아야 하고, 충신 열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결실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또한 땅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를 하나님 앞에 돌려 드릴 수 있는 인격적인 대표자가 되어, 하늘땅 앞에 공인받을 수 있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되어야겠습니다.

내겐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어떤 조건도 없다는 자신이 있어야 하고, 내가 싫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주시겠다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하는 것이 축복가정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축복을 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의심스럽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민족이 화를 입을까 염려하고 속죄의 제단을 향하여 나아가는 제사장과 같은 마음이라도 가지고 살아야 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옥중에 있을 때, 하나님은 원수를 가까운 친구의 경지로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걸 볼 때에 하나님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될 때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한칼에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멀리 보이는 언덕 아래에서 눈물 짓고 있는 아낙네들이 있었기 때문에 긍휼히 여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비운의 길을 걷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하면 그들이 비록 원수들이지만 그들을 위하여 복빌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복을 주고 좋게 할 때는 감사할 줄 압니다. 만민이 환영할 수 있는 영광된 자리에서는 쌍수를 들어 다 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로운 자리에 처해 있을 때는 환영하지 않습니다.

흘러가는 물소리가 내게 위로의 대상이 될 때 그 자연은 비로소 나와 인연을 갖게 되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에 그 자연을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십니다. 역사는 그렇게 해서 인연이 맺어지는 것이요, 꼬인 역사의 고빗길도 거기서부터 풀리는 것이며, 여기에서 원수가 친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에, 오늘 통일의 길을 찾아가는 우리는 누구나 환영할 수 있는 값싼 통일은 싫다는 것입니다.

갈보리 산상에서 예수님께 절박한 비운이 깃드는 마지막 순간 오른편 강도의 한마디의 말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위로의 말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예수님을 의지하고 싶고, 믿고 싶고, 예수님을 세워 드리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전도 내보내고 순회했던 1960년이 아주 인상에 남습니다. 요즈음은 순회를 해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이 오신다고 행로에서 줄지어 인사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찬바람 부는 곳에서 외롭게 서 있던 초초한 그 때의 모습, 사망세계의 보초인 양, 혹은 생명을 다짐하는 하늘의 깃발인 양, 정성을 다하여 머리 숙여 기도하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천지의 인연을 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어려운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도 사람들에게 몰리고 쫓기자 '나만 남았나이다' 하고 호소했을 때 그 심정 앞에 하나님이 동참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 해주셨기에 엘리야에게 승리의 결정권이 새로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