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보다 중요한 것 1968년 07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8 Search Speeches

주체성을 확립하라

선생님이 세계 4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내노라 하는 것은 다 구경했으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명예와 영광의 감투를 가지고 좋아하며 자랑하면 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망할 징조입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종교, 본래의 권위와 본래의 희망을 자랑하기 위하여 통일사상으로 정신적인 무장을 한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격동하는 오늘날 이 세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봤습니까? 우리는 주체성을 강조해야 됩니다. 이 땅에 나온 우리의 출처, 우리가 서 있는 현재의 위치가 어떻다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가 강조하는 높고 귀한 것이 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모두 우리의 이념권에 접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각오한 굳은 의지로 이것을 지켜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각자가 실천할 때 천국을 이룰수 있는 것입니다. 껄렁껄렁한 잡탕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평양 형무소에 있을 때는 박수 무당이라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이 자식아 너 이러이런 것 해 먹던 녀석이지' 하고 상대방이 말하기 전에 미리 알고 물어 보니 소문이 났던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을 공산당들이 듣고는 선생님이 무섭긴 무서운지 취조할 때도 셋 이상의 간수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평양 형무소에서 흥남 감옥으로 들어갈 때 선생님은 사탄세계에서 하나님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하나의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곳에 가더라도 정체를 밝히지 않고 안팎으로 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방에, 만세계 앞에, 인류의 가슴 가운데 등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생명을 좌우하는 환경에서도 꺼지지 않는 심정을 가지고 죽음의 관문을 돌파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즉 문화세계를 창조하는 기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통일교회도 그런 기반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통일교회 사상을 지녀 가지고 통일교회에 빚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죽고 어떻게 살 것이냐? 왔다갔다하는 인생으로 살다가 말 겁니까?

선생님은 감옥에 있을 때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많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없는 가운데서 나를 따르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때가 그립습니다. 영계의 권고를 받지 않고 듣지 않을 때에는 영적으로 두들겨 맞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이 수십 명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남한이 모두 수복되었으니 모두들 남한으로 내려가서 서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후 남한에 와서 보니 남아 있는 녀석이 한 녀석도 없었습니다.

감옥에서 제자의 이름으로 직접 데리고 나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전에 함경남도 함흥의 군청에 근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나오다가 함흥에 있는 그의 집에 들려 밥을 한 끼 얻어 먹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네 부모가 귀하지 날 귀하게 생각하여 따라 나서면 뭐 할 것이야'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부모가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어디 가든지 따라가고, 죽을 때도 같이 죽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다 어디 갔습니까! 남아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 후에 평양에 나와 있었는데 여기 경리부장(김원필)의 어머니가 장사 나가 있을 때 중공군의 포탄이 자꾸 떨어졌습니다. 피난을 떠나야 되겠는데 거기서 돌아가시게 그냥 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없어서 흥남서 같이 나온 문정빈씨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고 먼저 떠났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