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체휼신앙의 중요성 1971년 02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5 Search Speeches

체휼신앙을 개발하" 생활

여러분이 방 안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벌써 느낌이 다 들어옵니다. 이 웃음이 어떤 웃음이냐? 하나님 앞에 플러스되는 웃음이냐, 마이너스되는 웃음이냐? 느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삼고 되어지는 주위의 모든 요건들은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개발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교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혼자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중심삼고 살게 되면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안면이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아무렇게나 대하면 되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아 체휼적인 환경을 개발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사건건에 있어 틀림없이 효과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사는 신앙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만일에 죽음길을 간다 하더라도 이 죽음이 뜻 앞에 합당한 죽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벌써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마이너스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길을 가더라도 그것이 모든 체휼적인 감정에 접해서 가는 길이라면 웬지 든든하고 희망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만일에 반대하는 함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것이 충격이 되고 자극이 되어 나 자체의 중심이 꺾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회로 더 폭발적인 힘이 작용하게 되고 선의의 투쟁의 힘이 솟구쳐 나오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이 같이하는 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느낌을 가지고 분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활권내에서 타락이 벌어지고, 생활권내에서 실패가 벌어지고, 생활권내에서 하나님 앞에 배반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잠을 잘 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활동하면서 사사건건을 대하는 상대적 요건을 중심삼고 내가 발전도 할 수 있고 후퇴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이 관계를 어떻게 잘 조정해서 하늘화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느냐 하는 것을 수시로 연구해야 됩니다.

물건을 대해서도 그렇지만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척 볼 때,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사람의 성질에 따라서 전부 다릅니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저 사람이 나보다 심정기준이 낮다 할 때는, 내 기준을 낮게 조정해서 상대를 대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타격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느낌으로써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을 금방 알아야 합니다. 첫인상에서 무슨 감이 오느냐, 마음의 안테나를 통하여 이 둥근 마음에 어떤 느낌이 오느냐, 내 선입감이 아니라 공정한 입장에서 잼대와 같은 마음에 무슨 느낌이 오느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지 말고 느낌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가야 됩니다. 주체 앞에 나는 대상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좋은 결과의 기준을 중심삼아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이 주체의 소원이요, 상대인 우리 인간의 소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개체가 타진한 결과를 중심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척 보면서 첫번 느낌과 더불어 그 마음에 비춰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번 감이 '아하' 하고 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아하,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좋은데 어떻게 좋으냐? 그것은 여러분이 점점 그러한 도수를 높여 가게 되면 한 번만 척 보아도 마음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것이 척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약혼을 해줄 때는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의 윤곽을 똑똑히 안 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죽 돌아가며 봅니다. 어떤 느낌이 오는지 마음의 잼대로 쭉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이 둘이 어떠냐? 맞느냐, 안 맞느냐? 어떤 때는 쓱 보면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사람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하나되는 느낌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천생배필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둘이 등을 집니다.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서로가 좋아하려고 관심을 갖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시일이 지나면 참 좋은 상대가 됩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그러한 느낌이 몇 퍼센트 적중하느냐? 그건 여러분이 생활과정을 분석해서 결과를 타진해야 합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몇 퍼센트는 맞는다, 몇 퍼센트는 틀림없다 하는 이러한 내적인 인연을 여러분이 환경권 내에서 맺어 가지고 타진할 수 있는, 그러한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하나님이 같이하고 계시는지 악이 같이하고 있는지 분석해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런 신앙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키워 나가면 틀림없이 체휼되어 들어옵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나설 때 기도를 안 해도 괜찮습니다. 첫 걸음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어떤 길이냐, 좋은 길이냐, 가면 하나님이 좋을 수 있는 길이냐, 섭섭한 길이냐…. 첫번에 느껴져 오는 감이, '아 이건 좋다, 나쁘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쁘다 할 때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감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환경적으로 체휼신앙에 대한 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사람을 볼 때도 무심히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개의 정상적인 표정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분석하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개의 정상적인 태도는 저런 태도다, 또 정상적인 말의 음색은 저런 것이다, 웃는 것도 정상적인 것은 저런 것이다, 고충도 안 느끼고 기쁨도 안 느끼는 보통 때의 정상적인 모습은 저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