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집: 민족복귀의 역군이 되라 1963년 10월 16일, 한국 대구교회 Page #35 Search Speeches

탕감은 고생의 자리-서

오늘날 여러분이 서 있는 자리가 하나님이 걸어오신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을 선생님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메우기 전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연고로 하나님께서 무지한 인간을 용서해 주는 법도로 세운 것이 탕감입니다. 그러기에 일대에 조건을 세워서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탕감의 조건은 어떠한 자리에서 세우느냐? 편안한 자리에서는 세울 수 없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세우는 탕감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결론은 그렇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즐거워하며 입을 벌리는 큰 웃음을 웃는, 만족에 취하여 춤을 추는 그러한 자리에서 탕감이란 명사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자리에서 세워야 하느냐?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흐르고, 땀과 피가 흐르는 자리입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로 뒤넘이쳐 마음이자 몸이요, 몸이자 마음이 되어 안타까움에 사무쳐 통곡으로도 할 수 없고, 죽음으로도 할 수 없는 애달픈 자리에서 비로소 세워질 수 있는 것이 탕감이란 명사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인들은 생활적으로 보면 불쌍합니다. 지도하는 선생님이 온다고 해서 마중나오는 거 나는 싫어합니다.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비참 그 자체이며 불쌍함 그 자체입니다.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괴로운 눈물 그 자체입니다. 하늘 앞에 나선 예수는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보는 그 자체로 눈물이요, 보는 그 자체로 통곡이요, 보는 그 자체로 원통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 있더라도 삼천리 반도 곳곳에서 삼천만 민족을 대신하여 아버지를 위하여 충효를 다하겠다고 맹세하는 무리가 나타나기를 선생님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태중에도 있지 않을 때에 선생님은 이런 맹세를 했고, 여러분들이 꿈에도 이런 길을 갈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 선생님은 이미 이러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눈물이 많다면 삼천만 민족이 어느누구 못지 않게 눈물이 많습니다. 나에게 누가 나타나서 한마디만 하면 억제할 수 없는 통곡이 벌어질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선생님은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불쌍하냐?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천지가 제 아무리 넓다 해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했었는데,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선생님은 우주적인 복귀, 천주적인 복귀의 이념을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바쁜데 현실에 처해 있는 통일교회 무리를 바라보면, 개인복귀 사정도 나는 몰라, 가정복귀 사정도 나는 몰라, 민족이 어떻게 되든 세계가 어떻게 되든 나는 몰라라 하며 가다가 먼 산 바라보며 낙망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늘이 지금까지 닦아 나온 터전 위에 세우려는 통일교회 교인들의 모습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자각해야 되겠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곳이 없다고 한 것처럼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그 심정이 어느 정도냐? 집에 있어도 밖에 나가도 선생님은 몸 둘 곳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릎을 꿇으면 통곡밖에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대적인 사명을 하고 있다고 하는 현하의 통일교회 교인들이 가야 할 걸음이요, 해야 할 생활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과 여러분에게는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놓고? 영광을 놓고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요, 천지의 승리의 한 날을 놓고 공통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의 한 날이야 아무 때 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 있어 공통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탕감조건은 편안한 자리에서 세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 삼천만 민족이 어찌하여 허덕이고 있으며 어찌하여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한 환경 속에 있느냐? 그것은 탕감의 수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이 지은 죄와 이 시대의 인간들이 지은 죄를 하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탕감의 수가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원래 기성교인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었으나 그들은 책임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르쳐 주고 이러한 사명을 재촉하기 위해 온 사람이 통일교회 문선생입니다. 그러니 나를 따르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고생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이 민족이 편안해질 때까지 고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