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아버님이 같이 계시고 싶은 곳 1959년 11월 2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1 Search Speeches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 기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사람, 어떠한 민족도 품고 형제 아닌 형제를 형제로 여기고 부모 아닌 부모를 땅 위의 어떤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존재가 되지 않는 한,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마 22:37)"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기준은 어떤 기준입니까? 세상의 인간들이 하는 찌꺼기 사랑을 하늘이 원하시겠습니까? 하늘이 그런 자리에 들어올 것 같아요? 천만부당합니다. 다하는 정도가 어느 정도냐? 27억 인류를 품고 그들에게 있는 것을 전부 다 나눠주고도 부족함을 느껴야 합니다. '내가 요만큼 했으니 다했다' 할 수 없어요. 몸뚱이로는 그럴 수 없으니 심정으로 전체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정은 하늘 땅을 대신할 수 있고 전체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최고의 심정 하나를 내놓으면 아버지도 우리에게 다했다는 인정을 해주십니다.

그러면 그 심정기준은 어느 정도만큼이어야 하느냐? 자기 아들 딸을 사랑하는 그 기준 이하, 부부끼리 사랑하는 그 기준 이하, 자기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 기준 이하, 땅 위의 어떤 존재에게 흐르는 정적인 심정기준 이하의 기준을 가지고는 하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 기준 이상이어야 합니다. 인간이 그런 기준을 가지고 하늘 앞에 섰다면 벌써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이 땅 위의 사람을 사랑하는 심정기준 이하로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땅 위의 누구를 사랑하는 이상의 심정기준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도(道)를 위하여 자식을 버리고, 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중에는 자기의 목숨까지 버리면서도 '황공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상의 심정기준을 가져야 돼요.

예수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그런 말씀을 하였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욕먹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핍박받고 몰리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가 느낀 세계가 민족보다 더 중요하고, 피박받으면서도 가야 할 세계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 길을 갔던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품고 나가는 예수에게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있었다면 오직 하나님 한분뿐이었어요. 수많은 성현들이 왔다 갔지만 그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는 역사 이래 처음으로 심정세계와 인연을 맺은 책임자로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는 심정을 중심삼고 보아도 메시아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셨습니다. 다했습니다. 보십시오. 천만번 죽어 마땅할 죄악의 무리 앞에 하늘은 수많은 선지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 하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죽는 그들보다 몇 천만 배의 고통을 느끼시고 하늘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과 함께 통곡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처참한 역사의 해골곳이 역사노정을 더럽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와 같이 선한 무리가 쓰러질 때마다 하나님은 눈물의 고개를 넘으셔야 했던 것, 또한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정도로 남아지게 된 것이 이 땅에서 기도하는 자들이 있어서가 아니예요. 절대 아닙니다. 오늘날 이 국가가 이만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알아요?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늘 앞에 비료가 되어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이 꼴이나마 남아진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다하는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할 바를 다하셨다는 것입니다. 다하셨다는 거예요. 보십시오. 얼마나 안타까와하셨나. 모세를 세워 놓고 섭리해 나오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와하셨습니까? 돼먹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나오시기에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인사도 없이 배반해 버렸습니다. 보고도 없이 배반해 버렸어요. 의논도 없이 배반해 버린 선조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인간과 의논할 수도 없고 인간의 보고도 받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하늘은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러면서도 인간을 놓으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입장이요, 인간을 지으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신 수고 앞에 여러분이 그 대가를 치를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없어요. 여러분의 몸을 제물삼아 불사른다 해도 그 대가를 치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섭리노정에서 수많은 선조들이 제물이 되었지만 이루지 못한 것을 볼 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심정을 품은 어떠한 존재가 필히 인간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절박하게 느껴야 됩니다. 그러한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하나님은 인간 앞에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나오셨는데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머리 숙여 아버님을 생각할 때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심정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아버지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심정을 가진 자가 되어야만 그리워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고 바라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자기의 아들 딸이 죽어가면 정신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지요. 하늘이 그런 과정을 지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그리워서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향해 나갈 수 있고, 하늘이 그리워 허덕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망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