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진정한 승리 1971년 10월 24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8 Search Speeches

인간의 마음은 종.횡적 인-의 출발기점

역사를 초월해 가지고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녹음 잠시 중단됨 )

이와 같이 몇천 분의, 몇만 분의, 혹은 몇억 만 분의 일, 그 선에서 일체가 되는 그 기준에 딱 들어맞는 남자와 여자가 있으면 하나님도 그들을 보고 폭발적인 기쁨을 느끼실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에게서 태어나게 되는 그 아들딸은 하나님이 볼 때는 손자 손녀도 되지만 아들딸도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하나님, 그 다음에 아담이 있습니다. 그 아담의 마음이 하나님을 싸고 있는데 이것을 생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생심이 무엇이냐 하면, 종적 주체가 되시는 하나님은 횡적인 아담의 마음 가운데 임재하시는데 바로 하나님을 모시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생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라구요?(판서하심) 이 점은 하나입니다. 둘이 있을 수없습니다. 둘이 있으면…. 우주의 중심이 없는 데서는 존재가 확정이 안됩니다. 대상 세계에 있어서 중심이 없는 데는 존재가 확정되지 않는다 구요. 창조가 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소모되어 깨져 나가게 마련입니다. 창조가 한번 되면, 빨리 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 빨리 깨진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중심은 둘이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이 우주를 보게 되면 이 우주에는 하나님과 사람과 만물이 있습니다. 그걸 횡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 사람, 만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형이 우리 인간의 몸에서도 마찬가지 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중심삼고 보면, 만물보다 한 차원 높기 때문에 횡적으로 보게 되면 하나님, 사람, 만물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한 개인을 놓고 보면, 하나님 자리가 우리 중심의 자리요, 인간 세계를 대표한 자리가 마음 자리요, 그 다음에 만물 세계를 대표한 자리가 몸 자리입니다. 그렇게 축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 기준이 무엇이냐? 그것은 심정입니다. 사랑입니다. 그 기준이 연결되었을 때는 어떻게 될 것이냐? 슬픔이 출발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기쁨만이 출발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일이 잘되어 가면 좋아하거든요.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도 말을 할 때는 생각을 해서 하지요? 말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는데 생각 가운데 생각이 있다, 이렇게 되는 거라구요. 생각 가운데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관리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 가운데의 생각인데 그 차원이 높은 생각은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생각으로 임하여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 신령한 권내에 들어가게 되면 마음을 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뭐 있다구요. 마음을 보고 속에서 이야기를 한다구요. 마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있고, 마음이 몸을 보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영적인 체험을 해보면 그렇지 않아요? 대개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마음속에서 말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한번 해보라구요.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대개 이런 원칙을 모르는 사람은…. 최수운(최제우) 같은 사람은 인내천주의(人乃天主義)를 중심삼고 '하나님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곧 하나님이다'고 했습니다. 그거 맞다는 거예요. 단지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종적인 인연을 따라서 핵을 결정지어야 비로소 하나님도 여기에 따라오는데, 하나님이 따라오시는 그 거점이 사람의 마음의 중심이니까 결국은 하나님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는 거라구요. 그것을 몰랐다는 거예요. 횡적 기준만이 아니라 종적인 인연의 횡적 출발기점을 우리의 마음 중심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니 불교도 그 분야에 들어가서는 애매했다는 거예요. 석가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을 했지만, 그 자리를 몰랐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