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내일을 맞자 1970년 07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11 Search Speeches

인간이 지녀야 할 가치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은 존재라면 그 인간은 과거의 사실을 오늘날에 입증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지음받았을 것입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보다 가치적인 내용을 미래에 입증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런 가치적인 존재로 지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람은 희망을 품을 뿐만 아니라 희망하는 전체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는 가치적 존재로 태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만물 중에서 유일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만물 가운데에서 가장 높고 귀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서 있는 그 자리는 역사가 우러러볼 수 있는 자리요, 이 시대가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요, 미래가 그 가치 앞에 들어가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자리인 것입니다. 이처럼 미래까지 품고 나갈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라야만 유일체의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반드시 중심에 서서 전체의 가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사람에게는 세계적인 중심이 되려고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무한한 가치를 가진 중심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 중에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어하고, 또한 절대적인 중심이 있다면 그 중심과 하나되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보다 낳은 가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의 마음이 왜 그렇게 되어 있느냐? 그것은 본래 우리 인간이 역사시대의 전체 가치를 대표하는 중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타락한 인간세계에서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들이 자기를 보고 기뻐하고 자기가 생활하는 환경에서 즐거워하고 있느냐 할 때, 나 자신을 두고 기뻐하는 나 자신의 생활로 말미암아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찾았다 할진대 그 사람은 전체의 중심이 아닐 수 없고, 전체 행복의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그런 가치를 지닌 중심존재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키느냐? 이 거리를 어떻게 단축시켜서 그 결정적 중심 앞에 일치화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역사시대를 거치는 동안 뜻을 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생각하면서 간격을 좁히기 위하여 싸우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입니다.

그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일체화하기 위해서 우리 인간만이 힘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절대적 가치의 기준까지 갈 수 있도록 우리를 협조해 주는 하나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절대적인 존재로 짓고, 또 하나님이 인간을 책임지고 인간과 절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면, 어느 한때엔가 기필코 절대적 가치의 기준과 인간이 일치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요, 무한한 능력을 지닌 분이기 때문에 인간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또 그것이 성사될 수 있는 때가 기필코 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적인 사람들은 내일을 위해, 미래를 향해 하나의 세계를 바라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발전해 나온 것입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 출발의 때가 아니라, 역사적 종말시대에 머무른 때입니다. 우리는 이때에 하나님과 나와 일체화될 수 있는 기점을 나 스스로의 생활권내에서 내 인격을 중심삼아 가지고 완결지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현재를 말세라고 하고, 끝날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의 현재는 과거보다 더 나아야 되고, 미래보다도 더 나아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시대의 규탄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품고 나온 희망이 어떠한 것이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가문을 중심한 희망, 즉 김씨면 김씨 가문을 대표한 희망만 가져서는 그 가문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기준이 되려면 역사의 희망과 일치되고 이 시대의 희망과 일치되며 미래의 소망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어떠한 특정한 종족, 특정한 민족, 특정한 국가를 중심삼은 희망이 되면 결국에 가서 하나밖에 남을 수 없는 그 희망 앞에 심판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간은 이런 길을 피해 가기 위해서 양심이 바라는 길을 찾고,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누구든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섭리역사와 인류역사노정에 인연을 맺어 놓아야 됩니다. 이런 인연을 맺기 위한 것이 종교가 가는 길인 것입니다.

종교가 가는 길은 역사의 배후를 따라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과정을 넘어 환경을 초월하여 미래를 추구할 수 있는 보다 새롭고 가치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길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취하지 않는 종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시대권내에서 규탄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와 통할 수 있는 내용, 시대를 이끌고 미래로 갈 수 있는 종교적인 길을 찾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