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집: 제7회 만물의 날 말씀 1969년 06월 1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8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인류 앞- 무-을 주려고 했느냐

오늘 예수님을 보게 되면 그 일생은 패자의 왕이었습니다. 그 일생을 보게 되면 목수 애비 요셉가정에 있어서 목수 조수 노릇을 하면서 별의별 생활을 다 했습니다. 그가 무슨 소학교를 나왔어요, 무슨 대학교를 나왔어요? 형편이 무인지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이 무슨 부탁하게 되면, 남이 변소를 지어 달라고 부탁하면 변소는 안 지어 주었겠어요? 뭐 한다는 것 다 해주었을 것입니다. 문짝은 안 지었겠어요? 겉보기에는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들고 깎는 까뀌는 세계를 위하는 것이요, 그가 만지는 손길에 부딪치는 나무조각은 세계를 위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고 그가 쓸고 그가 깎아내는 모든 것은 앞으로 이 나라 이 민족과 세계를 구상해 가지고 하나의 선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그런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꿈꾼 것입니다. 그 꿈과 더불어 그생활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생각, 만민의 심중과 혹은 사연과 통할 수 있는 기점이 되었기 때문에 그 기점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는 발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예요. 받겠다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요? 받겠다는 것은,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자기가 중심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주겠다는 것은 누가 중심이 되어 있느냐 하면 내가 중심이 되어 있지않고 상대가 중심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는 데 있어서는 참 것을 주어라, 거짓 것은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여 주어라, 함부로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 앞에 무엇을 주려고 했느냐? 무슨 돈 보따리가 아니에요, 생명을 주려고 했습니다. 사망권에 있는 인류 앞에 생명을 주려고 했습니다.

생명을 주는 데는 어떻게 주려고 했느냐? 생명을 주는 데는 자기 생명에 하나님의 생명을 플러스해서 주려고 했습니다. 주는 데는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의 생명의 힘에 하나님의 생명의 힘이 닿을 수 있는 것까지 주었습니다. 또 주는 데는 뭐 헌신짝 집어 던지듯이 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하여 주었습니다. 자기의 온 사상과 자기의 모든 정성이 한 골수로 흘러가고, 천 태만상의 자연은 변할지라도 일편단심 이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런 마음을 가져 가지고 어떠한 원수의 진영을 거치는 한이 있더라도, 원수의 총칼 앞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철석같은 이 신념, 철석같이 맹세한 그 맹세는 천지가 변하기 전에는 변할 수 없다, 하늘이 자기의 위치를 옮기기 전에는 변할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생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생명을 첨부시켜서 그것을 심어됐기 때문에 활동하는데 있어서는 예수의 생명 이상 부활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는 역사요, 주는 역사의 내용을 두고 볼 때 세계사를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하나의 모체가 되어 있는 것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