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5집: 제22회 하나님의 말 말씀 1989년 01월 01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3 Search Speeches

"무형세계와 유형세계,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를 묶을 수 있" 것"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무엇이냐 하면 말이예요,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예요. 무형과 유형이 어떻게 결합하느냐 하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무형세계와 유형세계를 어떻게 묶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이론적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딴 무엇으로 안 됩니다. 육적인 무엇이 모체가 되어 가지고는 영적인 나와 육적인 나를 묶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부모와 육적인 부모, 타락하지 않은 본성의 기준에서 영적인 하나님과 보이는 실체적 우리 인류의 태초, 타락하지 않은 조상이 무엇을 중심삼고 묶어질 것이냐 이겁니다. 종횡이 반드시 하나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종횡이 하나되어야 되는데 무엇을 통해서 묶어지느냐 하면, 이것이 아까 말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끼리는 최단거리로 행하는 것입니다. 직단거리로 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위에 있는 하나님이 지상으로 찾아오는 직단거리는 수직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수직은 만 존재의 안정점을 표준으로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중심표제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뭐라 그럴까? 중심표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을 세워도 수직을 먼저 맞추는 것입니다. 평형을 먼저 맞추지 않습니다. 수직이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수직을 맞춰 놓고 평형을 맞춰야 됩니다. 아무리 평형이 맞는다 하더라도 수직이 안 맞으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직을 맞추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수직은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과 보이는 인간이 어떻게 묶여지느냐, 묶여질 수 있는 중심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를 오늘날 인간들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들어 봤어요? 무형의 하나님이 있고 유형의 인간들이 있지만 유형의 인간과 무형의 하나님이 무엇을 중심삼고 연락하느냐, 무엇을 다리 놓고 연락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 못 했다구요. 그건 돈도 아니요, 지식도 아니요, 권력도 아닙니다. 미모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이겁니다. 그 사람의 연령의 차이도 아니다 이겁니다.

무형세계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이기 때문에 지구성에나 일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지, 365일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지 딴 별의 세계에 위성 궤도를 갖고 있는 성좌가 있으면 그 성좌의 궤도에 따라 가지고 10년, 혹은 몇백 년짜리가 있다 이겁니다. 하루가 몇십 년짜리가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이 말하는 1년이라는 것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는 일년 표준 앞에, 그 불변의 궤도를 순회하기 때문에 그 권내에 나타난 연한이라는 것입니다.

무형세계라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거기에는 날이 없습니다. 지구처럼 빙빙 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영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밤이요, 언제나 낮입니다. 영원이예요, 영원. 여러분, 영계에 들어가 보면 광대무변한 것입니다. 끝이 없는 것입니다. 끝이 없어요. 그러면서 보면 원형적인 끝으로 되어 있다 하는 인식을 척 느끼게 됩니다. 무한광대한 세계예요.

그런 세계가 오늘날 인간세계와 무엇을 중심삼고 연락되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은 참사랑밖에 없는 거예요, 참사랑. 사랑 이것도 보이지 않아요. 신도 보이지 않아요. 공산주의자들이나 유물론자들은 `신은 관념적인 존재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관념적인 존재인 신이 어떻게 실체적 세계에 작용을 하느냐 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이라는 것도, 무형세계도 관념적이지만 사랑이라는 것도 관념적입니다. 보이질 않아요. 사랑을 만져 봤어요? 사랑을 봤어요?

사랑이 둥글더냐, 모지더냐? 가지각색입니다. 말을 붙이는 대로 됩니다. 뾰족하다면 사랑처럼 날카로운 것이 없는 거예요. 또 이게 둥글다면 그 이상 둥근 것이 없는 거예요. 사랑도 관념적인 것인데 관념적인 내용의 무형적 존재가 실질적인 생활에 있어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된다는 힘을 갖고 있는 그 자체가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적 모든 생활, 우리 인간 생활에 있어서…. 역사에도 사랑이 개재돼 있고 우리 생활에도 개재돼 있고, 친구애·동족애·민족애·세계애 천지애, 전부 다 애(愛)예요. 그 사랑을 봤어요? 추상적 명사이며 관념적 명사이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 관념이냐 실재냐가 문제입니다. 이건 실제 생활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힘, 내적 힘이지만 확대하면 세계성을 갖고 있고, 이것을 연장하면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수평만이 아닙니다. 구형 중에서도 무한한 구형과 통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이 실재와 관념세계의 존재들을 묶을 수 있는 가능한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이런 입장에서 사랑이 아닌가 하고 추리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공산주의자보고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을 봤어? 사랑이 있어?' 하고 물어 보라구요. 그건 관념적인 추상적인 명사입니다. 보이지 않거든요. 만질 수 없거든요. 설명할 수 없거든요. 그렇지만 관념세계의 모든 것을 넘어서 우리 실재세계에 처음부터 일생노정, 역사를 통해서 천년이나 만년이나 언제나 이 사랑을 떼어 버린 인생행로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볼 때, 실재 물건들의 골수의 방향을 집약해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사랑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