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통일교회의 길 1963년 10월 18일, 한국 광주교회 Page #87 Search Speeches

내일을 위해 조금만 참고 힘차게 전진하자

그다음에 내 소원이 말이예요, 통행금지 철폐입니다. 통일교회 교인들은 말이지요, 통일교회 선생님이나 지부장이나 지역장들은 말이지요, 통행금지라도 무사통과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러겠어요?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이 전라도에 와서 좀 살아야겠어요, 전라남도에서. 전라남도에 와서 살까요? 눈깔이 둥그래지는구만. `아이구, 선생님이 와 살면 살림을 누가 다 해주고?' 할 지 모르지만 여러분 신세 안 질께요. (웃음) 이제 물어보면 그저 `예!' 할 거라. 와서 살까요? 「예」 (웃음) 와서 살긴 살라는데 살자고 하면 큰일날까봐 그렇게 못 한다구요. 여기에 와서 싸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또,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면 말이예요, 내가 걱정이 안된다구요. 지금도 통일교회 문선생 온다고 삐라 붙이면 기성교회 교인들은 구경삼아 `왔나 보자' 하고 올 것입니다. 한판 들이죄기면 도망가는 사람도 있고 그저 넋 놓고 있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많은 사람이 동원될 걸 알고 있단 말이예요. 거 그 사람들을 때려 잡으려면 뭐, 물어 볼 거 없어요. 그런 건 선생님에게 수완이 있어요. 어디 할 능력이 있을 것 같아 보여요? 「예」 어디 능력이 있어 보여요? 「예」 삶으면 된다 말이예요.

이젠 본부에서 선생님이 계획하고 있어요. 라디오 방송도 하고 전부 울타리를…. 이젠 그거 문제 없다구요. 선생님은 어려운 가운데에 그걸 만들 거예요. 피땀을 흘리면서 하는 그게 필요한 거예요. 이래 놓고 선전은 나중에 퍼뜨려요. 사탄세계는 하기 전에 선전하지요? 우린 열만큼 해 놓고 다섯, 여섯만큼 선전하는 거예요. 그거 잘 모르지요? 우린 뭐 국제적인, 세계적인 기반을 닦아 가지고 이제…. 지금은 미국에서 기반을 닦아 가지고 대한민국을 아주 포위하려고 하는 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만 참고 힘차게 가는 거예요. 알겠지요? 「예」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갈래요, 안 갈래요? 「가겠습니다!」 그러면 갈거예요? 「예」 같이 해보자구요. 가―자.

그러면 이젠 내가 없어도 가는 거예요? 「예!」 선생님이 있건 없건 여러분들은 가는 거예요? 「예!」 가서 승리하는 거예요? 「예!」 참 다들 용합니다. 부탁합니다. 「예」 윤보선, 박정희도 선거유세 때 얘기 다 하고는 `부탁합니다' 했지요? 「예」 (웃음) 선생님은 다르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예」 여러분들이 잘되기를 부탁하는 거예요. 나 표 찍어 주고 말 조금 잘 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 아니예요. 여러분 잘되기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예」 오해할까봐 이런 말 하니 이해하라구요.

그럼 이제 선생님 들어갈까요? 「예」 그럼 아무거나 노래 하나 하자구요.「예」 (전체 애향가 부름)

힘이 나요? 힘이 나요? 「예」 그와 같은 힘으로 앞으로는 뛰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달려 나가야 되겠다구요. 알겠지요? 「예!」 여러분들, 전라남도에서는 날 해방시켜 달라구요. 해방시켜 주겠어요? 「예」 해방시켜 줄래요? 「예」 이젠 다시는 안 와도 돼요, 전라도에.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해방시켜 줬는데 뭘 또 오라고 그래요. (웃음)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다시는 안 와도 된단 말이예요. 이제는 마지막이예요. 이제는 날아가야 될 것 같아요. 날라가야 될 것 같아요. 지금 그럴 때가 왔다구요. 해방시켜 줬으니 뭐 다시는 안 와도 되지요? 그럼 또 오라구요? 「예」 또, 도망가겠다는 거구만요. 내가 안 와도 여러분들이 책임져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책임은 지는데 나는 구경하러 올께요. 「예」 여러분들에게 맡겨요? 「예」

선생님이 한마디만 할께요. 내가 맨 처음에 부산에 내려올 때 피난민으로서 피난 보따리를 지고, 괴나리봇짐을 지고 평양서부터 걸어 나왔습니다. 함흥서부터 걸어 나오는 데에 한 오십 칠 일이 걸렸어요. 이래 가지고 밥도 얻어먹고 그러면서 다니는데 말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하늘은 참 잘 알더라구요. 배가 고프고 정 지치게 된다면 쓰윽 벌써 알거든요? `아무날, 내일 모레쯤 닭이 생길 것이다' 생각하게 되면 어느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오셨습니까' 그러는 거예요. 그래 `누구세요? 난 모르는데요' 하면 `아닌 게 아니라 간밤에 우리 몇 대조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오늘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닭 잡고 떡 해 놓으라고 해서 떡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는 거예요.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십니까' 물으니 `보기에 초라한 행인으로 온다 했는데 보니까 선생님의 얼굴과 흡사하다'하는 거예요. 그거 믿어져요? 믿어져요, 여러분들? 「예」 그래 가지고 떡도 얻어먹고, 닭도 얻어먹고 그런 일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금도. 그런 일이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온 선생님인데 피난 나와 가지고는 말이예요…. 여러분들 지금 당장에 전도 나가는 사람은 그럴 것입니다. 복귀역사니 할 수 없어요. 선생님이 피난 가는데, 아, 부산에 오니까 사람 사태가 났거든요. 어디가서 은신할 데가 없었어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탄생할 때 사관(舍館)이 있을 곳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마구간에서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할 수 없이 마구간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탄생한 거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이 들어갈 곳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선생님도 뭐 밤에는 부둣가에서 자고 산속에서도 잤어요. 재미있어요. 한국 군인 오바를 척 깔고 잘 때는 말이예요, 그때는 2월 초라서 추웠거든요? 추웠기 때문에, 할 수 있어요? 밤에는 나가서 돈벌이하고 낮에는 열 시부터 두 시까지 자는 거예요. 그때는 양지쪽에 가서 가만히 앉아 가지고 꿩새끼처럼 딱 자리잡고 들어가 자면 좋아요. 떡 자고 일어나서 옷을 척 입었을 때에는 김삿갓 노래가 생각나는 거예요. `석양 지는 산마루 위에 잠을 자는 문서방' 이렇게 (노래를 부르심) 한때지만 입맞추어 가지고 부르는 것도 좋아요.

그래 가지고 떡 돈이 생겨, 죽을 먹고 싶으면 나갑니다. 부둣가의 아주머니들이 말이예요, 식을세라 보자기를 덮어 가지고 그저 자기 귀동자 외아들 품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귀하게 한다구요. 쓰윽 앉아 가지고…. 또, 그때엔 그 사람들이 친구예요. 아주머니들이 죽을 쑤어 오면 얘기를 들어 보는 거예요. `어디서 왔어요?' 하면 `피난민들 사정들 다 같은 사정들인데요, 뭐. 어디서 오나 뭐 말씨 들어 보면 어디서 왔는지 아실 텐데요, 뭐' 이러고, '영감님 계세요?' 하면…. (녹음이 잠시 끊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