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새롭게 출발하자 1968년 05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9 Search Speeches

신앙은 스스로 탕감의 길을 가" 것

하늘편은 언제나 맞고 나서야 때렸습니다. 맞고 때리면 그것은 정당방위지 죄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하늘편은 먼저 맞아 나왔지만 먼저 때린 쪽에서 번번히 져 왔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먼저 친 나라들이 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먼저 친 나라들이 졌습니다. 요즘에도 미국과 소련의 관계를 보세요. 미국이 번번히 맞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조그마한 월남을 중심삼고 큰 미국이 한대 얻어 맞았잖아요?

이제 하늘편에서는 공격작전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셔서 심판할 단계가 되면 세계적인 공격작전을 전개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오셔야 이 땅을 심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탄편에서 언제나 총칼을 들고 하늘편을 칠 수 있게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은 언제나 빼앗기면서도 좋다고 합니다. 지지리 고생하면서 쓰레기통 속의 벌레에 가까운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 작전 태세를 보이는 사람이 도(道)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원수 사탄에게 전부를 빼앗겨 버리고 더구나 몸에는 사탄의 피가 들어와 있습니다. 이 원수 사탄의 피를 칼로 찔러 뽑아 내야 합니다. 목숨이 할딱할딱 하더라도 죽지 않을 만큼 칼로 찔러서 뽑아 내야 합니다. 이 원수 사탄의 피가 아직도 남아 있을진대, 이것이 생명력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할 수 있는 입장일진대 선생님은 싫습니다. 이것을 전파(全破)해 버려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종교생활입니다. 종교생활은 사탄적인 육신을 치는 것입니다.

요즈음 술 먹어도 좋고, 담배 피워도 좋고, 뭐가 어떻고 어떻고 하는 패들은 사탄의 이웃 사촌들이 다 된 자들입니다.

종교는 악착같이 환경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부정의 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심정을 중심삼고 나오는 종교는 마지막에 승리하는 종교입니다. 그럴 것이 아닙니까? 어차피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나오면서 부정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부정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 가정 국가 세계를 모두 부정해야 합니다. 오로지 `하나님은 내 아버지요, 내가 그 아버지의 괴로움을 책임지고 싸워야겠습니다'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탕감은 누가 할 것입니까? 원리적으로 볼 때, 종의 탕감시대를 거쳐 양자의 탕감시대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 양자의 탕감권을 세우는 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종으로 출발해서 승리한 터전 위에 이루어 놓은 것이 이스라엘 민족인 것입니다. 따라서 민족권내에 들어온 사람은 양자권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직계의 아들권으로 넘어가야 됩니다. 넘어가는 데는 자기 혼자서는 못 넘어갑니다. 그것을 넘어가는 데는 한 그루의 참감람나무가 있어야 합니다. 이 참감람나무는 세계의 역사과정에 있어서 선민사상을 터전으로 하여 죄악을 청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참감람나무로 세워진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로소 참감람나무가 오셨으니, 그분을 중심삼고 가지를 잘라다가 접붙이는 운동을 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접붙이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혈통은 사탄의 혈통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직접적인 혈통 관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런 창조본연의 기준을 대표하여 오신 예수님은 이 역사를 그르친 인류 조상의 잘못된 기원을 타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이 땅 위에 확실히 성립시키지 않고는 구원이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그냥 이 상태로 살면서 지상천국, 평화의 세계, 평등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이 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랑하는 양자가 나오는 것입니까? 종도 필요하긴 필요하지요. 이웃 동네의 원수와 싸움의 판국이 벌어졌을 때 자기 집의 종이 필요하긴 필요하지요. 그러나 종보다는 양자가 더 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양자가 아닌 친자식입니다. 양자가 아닌 친자식!

하나님의 직계로서 죄악의 타락권을 없애고, 모든 죄악이 그를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그러한 아들의 사명을 갖고 오시는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볼 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맏형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맏형님은 누구냐? `아 나는 독생자다'라고 외치신 예수님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 맏형님이 사탄을 굴복시키고, 양자를 직계의 아들로 만들어서, 직계 아들인 자기의 책임을 다할 때 맏형님으로서 책임이 끝나고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이 책임을 못 하여 예수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어디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결과입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과연 기뻐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아들, 사랑하는 아들이 못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