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집: 아버지,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1960년 02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41 Search Speeches

고통의 예수를 믿어야 하" 신앙자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위인인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천민이었던 예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몰리고 손가락질 받던 예수, 제사장들이 바알세불을 힘입은 자라고 하던 그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주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나 고통스러운 예수님, 몰리시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원수를 대하여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하시며 복을 빌던 예수님, 아버지의 심정과 뜻을 염려하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 오늘 여기에 무엇하러 왔습니까? 여기는 불쌍한 예수꾼이 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람은 여러분을 몰리던 예수님의 친구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 불쌍한 자리에 서 있는 이 사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민족을 대하여 울부짖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대하여 원망한 때도 있었습니다. 죄인이 있다 할진대 나 이상 큰 죄인이 없다고 울부 짖어도 보았습니다.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남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보니, 기뻐하는 자리에서 가슴을 쳐야 했고 춤추는 자리에서 통곡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시대적인 죄인인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시대적인 배반 자인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하늘이 이런 나를 필요로 하기에 한결같이 그길을 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클어진 심정이 나를 이끌고 있고 붙들고 있기에 오늘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때로 책망도 하였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붙들고 통곡도 했고 권고도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개인으로서 여러분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아담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이 시간 나타나시옵소서. 가인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이 시간 나타나시옵소서. 함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나타나시옵소서. 아브라함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모세를 대하시던 아버지여, 예수님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나타나시옵소서' 하며 대했습니다.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이 일만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돌아보기가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느껴보았습니까? 눈을 들어 산천초목을 바라보기에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사망에 허덕이는 이 민족을 바라 보고 몸 둘 바를 몰라 통곡하고 이들을 대신하여 내가 제물이 되겠다고 허덕여 보았습니까? 그러지 못하였을진대 하늘의 심정은 여러분에게서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배워야 되겠습니다.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가져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심정이 하늘 것이 되는 동시에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겠고 시대적인 것이 되어야겠고 미래적인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봤습니까? 세상이야 어떻게 하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던 마음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 심정을 넘어서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앞을 바라보고, 아버지와 더불어 뒤를 바라보고 아버지와 더불어 주위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것으로서 사로잡힌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인연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것은 십년도 아니요,백년도 아니요, 천년도 아니요, 6천년도 아닙니다. 창세 전부터, 창조의 대계획, 즉 창조이념을 세우던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 앞에 붙들린 바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나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싶고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천사와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리고 그리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슬픔이 생기게 되었으니, 여러분은 '나는 아버지와 더불어 슬퍼하고 싶어요. 6천년 동안 슬퍼하신 아버지와 더불어 슬퍼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까?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으나 그런 마음을 가졌던 선조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천적인 곡절이, 비통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담은 어떻게 되었으며,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되었는가? 또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 모세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으며, 요셉가정을 중심한 예수님의 생애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피 살이 아버지의 피 살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가 동하면 내가 동하고 아버지가 정하면 내가 정하고 아버지가 기뻐하면 내가 기뻐하고 아버지가 슬퍼하면 내가 슬퍼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