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하늘의 성화 1969년 09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9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을 아셨던 예수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면서 인류에 대해 `아이고,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너희들은 나의 서러움도 몰라주는구나' 하는 원한의 마음을 갖고 나오셨다면 당신의 뜻인 평화의 세계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참다운 곳에서 살아가고 싶은 당신의 뜻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만이 편안하기 위해 복귀역사를 해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자식이라 하더라도 부모는 그 자식을 구하기 위한 간절한 마음 때문에 가는 세월을 안타깝게 느끼는 것입니다. 시간 가는 것이 그토록 빠르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도 인간을 구하겠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시간을 초월하고 환경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하고 어떠한 환경도 극복하면서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충성하겠다는 아들딸이 나오면 그는 어느 누구 못지 않는 권한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아들딸과 인연된 나라는 그 어느 나라에서도 갖지 못한 충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아들딸의 모든 사지백체는 하나님의 소원의 토대요, 사랑의 기본이요, 모든 한이 풀어진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인간 세계에서 풀어야 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올 때, 그는 천하무적인 한 용사로서, 진정한 하늘의 대역자로서 당당하게 하늘의 뜻을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게 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었던 그 여력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에 대해 얼마나 정성들였는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도수(度數)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배척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용서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수고해 나온 하나님의 사랑의 노력을 받들어서 그것을 주장하면서 나왔지만 그는 민족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어려운 입장에 빠졌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도 그는 미래에 새로운 이념을 남기고 사랑의 보람을 남기겠다고 몸부림치며 죽어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제2차적인 섭리로 부활의 권한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지금까지 뜻을 중심삼고 나왔을 것입니다.그러면 여러분이 이런 내정적인 심정으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리를 잡았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가야 되는 운명길이라면 당당히 가야 합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평범하게 세상의 어떤 아낙네와 결혼하여 그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아들딸을 낳고 산다거나, 어떤 직장에서 과장이라든가 부장이라든가 하는 감투를 쓰고 거기에 만족해서 산다면 그건 아주 시시한 것입니다. 시시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사고방식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것 가지고 뭘 할 거예요? 교회 다니면 뭐가 다르냐는 거예요.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과 무엇이 달라야 하느냐 하면 바라는 환경이 달라야 하고 보는 관점이 달아야 하고 강평의 기준이 달아야 합니다. 이렇듯 여러분은 행동거지가 달라야 합니다. 행보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