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통일식구의 사명 1971년 01월 16일, 한국 부산교회 Page #40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해원을 위한 일가(一家)가 되라

통일교회는 통일교회로 끝나는 단체가 아닙니다. 통일교회가 아니라 통일가(家)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통일교회하고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간판은 언제든지 뗄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대신 통일가입니다. 통일가(統一家)할 때 '가'자는 무슨 '가' 자입니까? 「집 '가' 입니다」 집 '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성은 무엇입니까? 우리 통일교회 식구의 성은 무엇이겠어요? 「통일가요」 통일가입니다. 통일가이니 길게 읽어 보면 한 '일'자 일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래도 일가요. 저래도 일가라구요. (웃음) 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가가 없어서 죽었으니 일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일가를 다시 찾지 못하면 사랑할 수 있는 기반과 사랑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지 못하면 해원성사, 즉 한을 풀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굿하는 것을 본 적이 있지요? '배뱅이굿' 이라는 말 들어 봤지요? 배뱅이를 불러 가지고 한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처녀가 죽어서 된 귀신을 무슨 귀신이라 하던가요? 「몽달귀신」 몽달귀신인지 낯짝귀신인지 나는 잘 모르는데 그러더구만. 그 귀신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볏단으로 남편을 만들고 잔치상을 차려 가지고 후루룩 날려 보내는 놀음을 합니다. 그렇지요? 한을 풀어 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에서 차원이 조금 다를 뿐이지, 거기에는 통하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죄를 지으면 제사를 드려야 됩니다. 제사를 드리는 것은 죄지은 사람 대신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뿌림으로써 탕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말미암아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뜻을 다 못 이루었습니다. 영적으로만 이루었던 거예요. 예수님은 영적 육적의 실체를 중심삼은 이 땅 위의 만군 만왕의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천하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과 영광을 가지고 이 땅 위의 그 누구보다도 호화찬란한 생활을 거쳐 가지고 생애를 마치는 그날 만민이 추모하는 가운데 고이 가야 할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다니…. 그러려면 왜 4천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세웠겠어요? 괜히 만들어 가지고, 얼마나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까? 죽이려면 한 날 전부 다 강변에 떼거리로 모아 놓고 죽여 버리지, 왜 그렇게 해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당시 유대교의 교법사 제사장들, 니고데모 같은 작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렇게도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교의 교법사 같은 인물들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있었어요? 있었어요, 없었어요? 전부다 세리의 친구라고 비난을 했습니다. 마시고 먹기를 즐긴다고 비난했습니다. 기가 막힌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에서는 그런 것은 생각도 안 하는구만. 마찬가지라구요. 주님이 오실 때도 마찬가지로 딱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 목사 가운데는 간판 붙어 있는 목사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도 없어요? 그것은 통일교회에 누구나 못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여기 기성교회 목사가 있다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색다른 목사, 다시 말해 기성교회의 이단 사촌쯤 되는 그런 목사들이 들어올는지는 모르지만 기성교회의 간판 있는 목사들은 전부 예수 잡아 죽이는 데에 날인해서 공문 돌리는 그런 패들밖에 안 되니 못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래 통일교회가 그들의 원수지요?

하기야 선생님이 잘났으니 그렇지 내가 못났으면 그렇게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며칠 떠들다가 떨어질 사람 같으면 가만히 내버려 둘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두고 보니까 자기네들의 똑똑한 패들을 빼 가는데 나중에는 자기네 패들을 시켜 가지고 대들보까지 소리없이 몽땅 빼가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서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무서워서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왜 무섭다는 것입니까? 내가 뭐 칼 가지고 대포를 걸어놓고 목사들한테 겨누고 있습니까? 그렇지만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사나이가 놀음할 판국을 짜고 나오게 될 때는 자기들이 어느 사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어떤 배지기에 들려 넘어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