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성탄일을 맞이할 사명 1966년 12월 2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19 Search Speeches

예수를 배반했던 유대 민족의 죄를 탕감하겠다" 자세를 가져야

탕감복귀 원칙에는 용서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통일교회 교인들을 죽음의 길로 몰아내는 겁니다. 예수를 배반한 무리들, 12사도 배반하고 도망갔던 것을 넘어가려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는 무리를 쫓아내어 죽음길에 들이미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 죽겠다고 도망을 갔지요? 난 반대예요? 따라오겠다고 하는 자들을 죽을 길에 처넣는 거예요. 예수를 따라다니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 없이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되는 겁니다. 예수와 더불어 죽는 것은 쉽다는 겁니다. 예수를 배반했던 죄를 탕감하기 위해서는 예수가 없는 데서도 예수를 위하여 죽음길을 대신 갈 수 있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민족이 배반했을 때의 서글픈 마음을 탕감하여서 사탄을 대하여 '이 자식아!' 하고 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네 이놈, 이러한 조건으로써 내 가슴에 못을 박고, 하늘에 한을 맺고,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사망권을 만들어 놓았지? 이런데도 풀지 못할 거야?' 하면서 사탄을 추방해야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에서는 통일교회 선생님을 따라가겠다고 하는 무리를 무자비하게 고생길에 내몰았습니다. '죽음길을 가라!' 하고 내몬 것입니다. 거기에서 보따리 싸 가지고 도망가는 사람은 다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홀로 죽더라도 응당히 역사적인 모든 죄를 탕감하는 입장에서 죽겠다 하고, 죽더라도 예수가 민족을 안고 세계를 안고 간 것과 마찬가지로 창건의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복귀를 이념을 중심삼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죽음길을 고이 가던 발자취를 따르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죽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그것을 지키겠다 하고 사탄의 화살을 맞지 않고 죽지 않고 부활의 권한을 갖고 나타나야만 민족 해원성사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겠기 때문에 오늘 통일교회는 그것을 모방하여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주위에서 별의별 소리를 다 해도 우리는 아랑곳없습니다. 들어 줄 여유가 없습니다. 내 갈 길이 바쁘니 동네 개야 짖겠으면 짖고, 길에서 낙오되어 쓰러지겠으면 쓰러지고, 상관없는 행객이야 쓰러지려면 쓰러져라 이겁니다. 상관할 수 없어요.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상관을 못 하는 거예요. 민족적인 한을 탕감할 수 있는 역사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이런 길을 개척하고자 하여 나는 여러분을 이끌고 나온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이끌고 나와서 뭘할 것이냐? 구원의 목적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나라를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구원복귀 승리의 터전을 마련하게 될 때는 종족복귀는 물론이요, 가정복귀, 개인복귀는 자동적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 신앙자가 가야 할 길이요, 예수의 전통적, 본간적(本幹的)인 사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 가기 위해서 믿어요? 이 껄렁껄렁한 패들, 이놈들을 내가 전부 이 지구상에서 추방하려고 한다구요. 그런 교회는 망해야 됩니다. 나라를 찾지 못하고 망해야 됩니다. 나라가 나라를 상관하지 못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얘기하겠는데, 지난날의 역사는 흘러갔어요. 이 역사가 다시 한 번 상봉하여 풀려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역사적인 거리를 남겨 놓고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아무런 조건을 갖지 못한 내 자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원리를 중심삼고 원리 배후에 있는 특별한 심정의 인연을 통해서 아담 가정에서부터 해원성사하자는 것입니다.

아벨에 대해 하나님이 이러했고, 가인을 대한 하나님의 서글픔이 이러했고, 노아의 가정을 대하던 하나님의 섭리가 이러했으니 그 내정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엎드릴 적마다 그걸 생각하면 피가 뛰쳐 나오는 심정을 느끼면서, '아버님,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하고 눈물로써 위로하고 '아버지를 내 가정에 모시고 천년 만년 살고 싶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떠하고, 핍박이 심하면 어떠냐?' 하며 내 맘으로 모시는 그 정성으로 남 모르는 가운데 내적인 천국의 기준을 닦아 가지고 '승리적인 천국이, 세계적인 승리적 심정의 터전이 나로 말미암아 닦아졌습니다' 해 가지고 '이제 나로부터 이 육적인 세계에서 제1보의 행차를 단행하시옵소서. 하늘의 권고를 바랍니다' 하며 나설 수 있는 자녀의 명분을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명분을 갖춰야 할 것이 우리의 사명인데도 불구하고 오늘 통일교회 성도들을 볼 때, 그런 무리가 많지 않은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나는 그렇지 않아요. 이를 위해서 나는 생애를 몇천 번 아버지 앞에 바치겠다고 각오를 했고, 죽기를 몇만 번 내적 외적으로 다짐했는지 모릅니다. 화살이 몰려들고 모진 시련에 부대낄 적마다 '내 아버지 가신 길' 하며 참았습니다. 내 아버지입니다. 남의 아버지가 아니예요. 하나님이란 말은 안 씁니다. 내 아버지가 가신 길! 내 아버지! 내적인 '내'라는 의미는 넓고도 큽니다. 내적이라는 의미도 포함되고 자기 편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전부가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느끼면서 복중시대, 육신시대, 이념시대, 이 3시대를 거쳐서 그 마음속에 기억될 수 있고, 그 생활 속에 기억될 수 있고, 그 이름 속에 새겨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지금까지 그런 자리를 통해서 찾아 나온 길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런 길을 닦아 나오는 시대적인 구원섭리 과정을 거쳐오기 때문에 그 섭리과정에 있어서 동행하고 동사할 수 있다는, 이때의 사명을 생각할 때 그걸 무얼 주고 바꿀 겁니까? 뭘 주고 바꿔요? 세상의 명예는 한때일 뿐 흘러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행락은 한때일 뿐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는 길, 우리들이 남기는 터전은 영원히 영원히 하늘과 더불어 지내질 것을 생각하면 이 길 이상 더 나은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통일교회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불쌍하지 않아요.

내가 지방을 순회할 때 눈물로써 그들을 대할 때가 많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참고 가는 걸 보게 될 때 서글프게 생각합니다. 얼마나 참느냐,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비참한 가운데서 하늘과 심정적인 결탁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고생하겠다고 하며 굶으면서도 빈 식기를 붙들고 밥을 그리워하면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그 자리에는 하늘의 간장이 녹아나는 겁니다. 혹은 뜻을 위하다 철창에 갇혀 매를 맞고 옷이 찢기고 눈물짓는 그러한 고문의 자리에는 하늘의 심정이 폭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효자의 명패를 박겠다고, 충신의 명패를 박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시대에 그런 사람이 없었거늘 이런 역사적인 심정의 배후를 알아 가지고 하늘을 위로하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한 많은 순교 열사들을 해원성사해 드려야 되겠다고, 당신들이 간 길이 이러하거늘, 나도 이 길을 감으로써 당신들을 위로하고, 당신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한 약속을 가까운 미래에 두고 기필코 성취해 드리겠다고 다짐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통쾌하고 의의 있는 일입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각오해 봤어요?

통일교회는 그러한 원칙과 그러한 생활터전과 그런 이념적인 일을 해 가지고, 예수 앞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둘도 없는 효자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통일교회 전통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이외의 존재들은 전부 사기꾼들입니다.

그 전통만이 남아지게 될 때, 거기서부터 하나님의 개인은 다시 한 번 소생할 수 있는 것이요, 그 전통만이 남아지게 될 때, 하나님의 아들딸이 고이 자랄 수 있는 것이요, 그 전통만이 남아지게 될 때, 하늘나라는 재창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철칙입니다. 이런 내적 사연을 여러분이 생각하면서 그렇지 못했던 과거의 자기를 비판하고 현재의 그렇지 못한 자기를 정비해 가지고 내일의 숙명적인 내 운명을 새로운 터전으로 마련하겠다고 결의하고 나설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재차 결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야만 하늘이 요구하는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이 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오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날을 맞게 될 때 하늘이 감사하게 되고 예수님도 이날을 맞는 의의를 갖게 되고 앞으로의 소망의 이스라엘이 우리로 말미암아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고 오늘 이런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