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집: 형제의 애 1968년 03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 Search Speeches

입체적인 하나님의 사'

원리강의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상대적인 여건에서 나타난다고 하죠? 상대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혼자서 사랑이 됩니까? 상대성을 부정해서는 사랑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에 나타나느냐? 하나님의 가슴에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피조만물에 나타납니다.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어디에 나타납니까? 자식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남편이 있는 곳에는 아내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남편이 입은 옷에서도 아내의 사랑이 나타나야 합니다.

요즈음엔 여자들이 참 편합니다. 옷을 만드는 데도 재봉틀을 사용하고 남의 힘을 빌립니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우리 어머니를 봐도 그저 저고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한 바늘 한 바늘 온 정성을 쏟습니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인 것입니다. 가슴으로부터의 사랑은 그만두고라도 생활에서 사랑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식을 보아 부모의 사랑을 알 수 있고, 남편의 옷 끝을 보아 아내의 사랑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 나타난 사실을 보아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습니까? 알고 보니 전부 다 싸움을 하고 복잡해져 있는데 사랑은 무슨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입체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여러분 중에 누가 나가다가 벼락을 맞아 죽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통일교회 갔다가 벼락 맞았으니 '통일교회는 나쁘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벼락을 맞았다면 벼락을 맞은 까닭이 있는 것이요,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벌을 받는 것은 동기가 벌을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가 무엇일 것이냐? 수천대 선조로부터 쌓은 죄가 연결되어 그것이 뭉치고 뭉쳐서 터지고 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생을 70년이나 80년만을 놓고 따지다 보니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수천년을 잼대로 재 보면 다 공평합니다. 선을 쌓으면 올라가고 죄를 쌓으면 내려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누구 누구는 복 받았어' 하지만 복을 받아도 잘못 받으면 망합니다. 복이 가는 길을 붙들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복이 가면 꽁지만 붙들어도 그건 내 복이 되고 복의 머리를 타고 가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복을 받는 것은 선조들이 고생을 하고 선행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별 것 아닙니다. 선조의 공로가 없으면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파산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운세는 천운에 보조를 맞추며 따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국운이 훌륭하다고 세계에 자랑하더라도 천운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남김없이 파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만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인간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세계에는 자식을 모르는 어미가 있고, 어미를 모르는 자식이 있습니다. 그 어미에 그 자식입니다. 그런 자식이 어떻게 어머니를 아껴줄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다 글러 먹었다는 것입니다. 형제가 서로를 파면시키지 못해서 안달하는 세상입니다. 이제 이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까지 왔습니다. 끝날이 온 것입니다. 귀찮은 세상이라면 어서 끝날이 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끝날에 바꿔치기를 못 하면 망합니다. 예를 들어서 '난 한식밖에 먹을 줄 몰라. 양식은 절대 먹을 수 없어' 했는데 한식이 다 없어졌다 이거예요. 그러면 양식을 먹을 줄 모르니 굶을 수밖에요. 끝날에는 바꿔쳐야 합니다. 소화불량이 생기지 않게 바꿔쳐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먹으면 소화를 못 한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돌바위를 삼키더라도 와작와작 씹어서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무엇이라도 먹어서 영양소를 만들 수 있는 소화력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선생님도 일본에 가서는 일본 음식을 먹고, 미국 가서는 미국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외국 사람들은 고추장을 보고는 삼십육계 줄행랑을 칩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흉한 고추장이지만 선생님은 그 고추장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또 한국에 돌아와서는 다른 음식을 다 제쳐놓고 김치를 먹었습니다.

외국이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것이 대개 비슷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 식사하고 이 닦고 회사에 출근하고, 점심 먹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고, 아들딸과 부인을 데리고 살고 합니다. 별 것 없습니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고추장과 김치는 밤이 되어도 먹고 싶고, 낮이 되어도 먹고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바꿔치기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김치를 먹고 바지 저고리를 입고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날에는 바꿔치기를 해야 합니다. 사상을 바꿔치고 몸뚱이를 바꿔치고 종교를 바꿔쳐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