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집: 최고의 정상 1971년 04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 대신자가 되어야

슬픔으로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어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어 들인다는 원칙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슬픔으로 심었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 기뻐하실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아무리 기뻐하실 수 있는 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슬픈 환경이 자기와 하나되는 입장에서는 기뻐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어려운 가운데 있게 될 때 어려운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와 같이 고생하려고 하는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가진 부모는 돈이 없더라도 자기와 더불어 동고동락하기를 원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자리에서는 긍휼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새로운 소망을 다짐할 수 있는 자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데 자식이 그 슬픔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기뻐하는 자리로 나간다면 거기에서는 절대로 뜻이 같이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데 자식이 부모보다 더 슬퍼할 수 있는 자리에 가게 되면 그 부모와 역사적인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모든 것을 상속해 주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와 더불어 슬퍼하는 자리에 있는 자식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 자식아, 너는 이와 같은 마음을 죽을 때까지 가져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이런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간절하고 더욱 높고 더욱 넓은 슬픔을 가지고 수난길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자기의 전부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부를 주고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수난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부모라 할진대는 부모 이상의 수난을 앞에 놓고 다짐하고, 그 수난길을 가는 것을 생명시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부모의 슬픔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슬픔을 넘어서기 위해 다짐할 수 있는 아들딸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슬픈 자리에 있는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을 우리가 생각하게 될 때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으로 뿌렸기 때문에 슬픔으로 거두어야 할 운명길을 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나 스스로 기뻐하며 가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슬픈 부모를 어떻게 위로하고 그 부모보다 더 슬퍼할 수 있는 자리에 어떻게 나가느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런 운동, 그런 결의, 혹은 그런 맹세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위로하고 하나님을 자극시켜서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현재의 환난 시대를 극복하여 넘어갈 수 있는 놀음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타락한 인간의 부모와 자식간에 벌어지는 것과 같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슬픔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슬픔의 역사를 스스로 개척하여 금후에 연속되는 최후의 끝과 최고의 정상까지 가야 됩니다. 이 길이 하나님이 가셔야 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기 개인을 중심삼고 기뻐하고, 먹고, 울고, 자기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결렬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최후에 가야 할 최고의 정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디서부터 최고의 정상을 이어받느냐, 어디서부터 최고의 정상의 길을 연결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슬픔으로 출발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슬픔으로 거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기쁜 날이 언제 있었습니까? 세상에서 뜻을 알고 좋아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슬픔을 알아 가지고 한걸음 앞서서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고 외로움을 극복하면서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자리를 소망하셨던 하나님인 것을 알고 그 수난길을 대신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무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