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생사의 한계 1970년 07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29 Search Speeches

인간의 비극이 청산되기를 "라시" 하나님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는 물론이요 후세까지 하나 알아야 할 것이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은 병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땅 위의 인간들의 일과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상반된 환경에서 가려져 나가고, 또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비극이요, 인류의 비극입니다.

만일에 인륜을 중심삼고 가는 길이 하나의 원칙에 방향을 갖추어 나가 천륜과 보조가 맞는다면, 오늘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요, 인간 세상에 되어지는 모든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이 될것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우리 인류 앞에 기쁨과 슬픔을 같이 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기쁨을 위에 두고 슬픔을 반응적인 것으로 두었을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 높은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상대적 관계에 있어서 필요한 자극의 요인으로 삼기 위해서라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그 기쁨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슬픔을 주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고 결론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붙들고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를 물어 보더라도 인간의 생활은 비극이라고, 인류가 살아 나온 역사 그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하기에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누구에게 물어 보더라도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러한 역사시대를 우리 선조들 역시 살다가 간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런 역사가 엮어져 나왔다면 시대의 환경을 감싸 가지고 새로운 역사시대, 미래로 향하는 이 순간에 있어서 내일을 어떻게 되어질 것이냐?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슬펐던 모든 것을 내일에 슬픔으로 넘겨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소원일 것이냐? 땅 위에 어떠한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그도 그 슬픔을 자기 대에서 종말짓고 싶지 자기 후대에 넘겨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단체적으로, 가정적으로도 그럴 것이며, 그 한계는 천태만상일 것입니다. 그러한 한계가 있더라도 양심을 가진 사람은 그 한계권내에서 스스로 선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천성의 인연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자연적인 심상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이 비극의 역사, 슬픔의 모든 요인을 내 일대에서 막을 길이 없겠느냐? 내 일대에서 안 되면 우리 가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가정으로 안되면 우리 친척이면 친척, 씨족이면 씨족, 종족이면 종족을 중심심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그것으로 안 되면 어떠한 다른 민족을 중심삼아 가지고 막을 길이 없겠느냐? 민족을 통해서도 안 되면 어떠한 하나의 주권국가를 세워서라도 막을 길이 없겠느냐? 이것은 선한 미래를 남기고 싶고, 기쁘고 행복한 미래를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중대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슬픔의 역사가 미래에까지 지속되기를 과거에도 생각하지 않으셨고 현재에도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비극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서슴지 않고 `오냐, 남기고 싶었던 소원의 실체가 나타났구나!' 하시며 역사를 들어 맞이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가정이 나타났다면, 그 가정 앞에 세계의 슬픔을 다 책임지워 주고, 그 가정 앞에 전부를 맡기고 싶으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럴 수 있는 씨족이 있으면 그 씨족 앞에 맡기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미래에 이러한 원한의 터전이 남아지기를 원치 않으니 자기들에게 그런 화를 막아내는 책임을 지워달라고 하는 민족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민족 앞에 서슴지 않고 슬픔으로 엮어온 역사를 몽땅 책임 지울 것입니다. 하나의 민족을 제물삼고, 하나의 국가를 제물로 삼더라도 하나님은 당장에 그슬픔과 어려움을 그들 앞에 맡기고자 하실 것입니다. 그 민족이 죽어 가는 입장이 아무리 슬프고, 아무리 보기에 끔찍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가고 싶으신 아버지의 내심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