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집: 체휼신앙의 중요성 1971년 02월 0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3 Search Speeches

무의미하게 사물을 대하지 말고 원리를 '심삼고 대하라

이렇게 여러분이 찾아 나가게 되면 무슨 일을 대하든 벌써 마음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나 물건을 대하게 될 때,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 대번에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내 마음과 뜻이,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데 있어서 일체가 되어야만 3점이 되어서 본래의 동기, 즉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일치되는 사위기대권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리하여 그 물건이 나와 주체와 대상의 결과에 부합된다는 가치를 발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목적의 결과가 거두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대상의 물건으로서 선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러한 선의 결과를 내 주위에 많이 놔두면 놔둘수록 나 자체에 있어서는 재창조 과정의 자리가 점점 넓어지는 것이요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서면 설수록, 그런 생활을 하면 어떤 물건을 대해도 벌써 그 물건 자체에서 나에게 파장이 옵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원만한 마음으로, 사심을 떠나서 공명할 수 있는 음차와 같은 마음으로 그 물건을 심각하게 대하게 되면, 그것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감정이 우러납니다. 그것이 나에게 플러스가 되느냐, 아니면 마이너스가 되느냐…. 이렇게 언제나 타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파장이 오지 않으면, 공적인 입장에서 사심을 떠나 가지고 마음을 둥근 다이얼과 같이 해 가지고 일이면 일, 물건이면 물건을 척 대했을 때 첫 인상이나 처음 들어오는 감정을 통해, 이것은 틀림없이 플러스된다 하는 느낌을 가지고 그 일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무의미한 자리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마음으로 진실된 입장에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해보면 좋고 나쁜 결과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래서 내가 감정한 것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생활 가운데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생활 가운데서 플러스된다고 느꼈던 첫 감정이 몇 퍼센트나 적중하느냐 하는 것을 언제나 주시해야 됩니다. 그러한 생활태도를 점점 습관화시키면 열 가지 일 가운데서 다섯 가지, 여섯 가지 이렇게 점점 그 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걸 키워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도가 높아져 간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에 나쁘다 하는 것을, 좋지 않다 하는 것을 했는데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하게 될 때는 그것은 뜻이 같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을 대할 때에는 무의미하게 대하지 말고, 반드시 원리원칙을 중심삼고 대해야 합니다. 사위기대 형태의 내용을 중심삼아 가지고 내 체휼적인 감정을 어떻게 계발하느냐 하는 문제가 지극히 중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직장생활에서 물건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그 회사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물건은 공적인 물건인데도 불구하고 소홀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 마이너스되는 사람입니다. 그 물건은 나라의 물건이요, 하나님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종이 한 장도 그렇게 허술하게 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술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그 대가를 추구하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심정적인 체휼의 도를 넓히기 위한 조건물로서 찾기 위해 노력하고 생활적인 감정을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되면 생활권내에 있어서 반드시 하나님이 같이하신다는 것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하면 대할수록 내가 대하는 그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같이했다는 것을 실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활하는 사람은 지칠래야 지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손해를 보고, 그 손해가 현재의 입장보다 막중하게 될 때는 거기에서 타격을 받아 가지고 떨어져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체휼신앙의 개발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언제나 물건을 소홀히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각하게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신앙길 전체가 걸려 넘어갈 수 있는 조건도 거기에서 성립된다는 거예요.

일을 할 때도 그렇게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바느질을 한다 할 때, 거기에는 자기 남편을 위한 바느질이라든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것이고, 혹은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한 바느질도 있을 텐데 한결같이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혹은 삯바느질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받기 위해서, 이익을 보기 위해서 그저 아무렇게나 가지 수나 늘려 일하게 되면 반드시 막혀 버리는 것입니다. 그 일도 내 일과 같이 나의 사랑하는 사람의 옷과 같이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게 되면 그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대할 때 '이것은 선한 물건이구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체휼신앙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성을 들였는지 안 들였는지 대번에 감정해 낸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물을 그렇게 관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