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참된 식구가 되자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42 Search Speeches

예수님이 못 이룬 식구의 인-을 맺어야 할 통일교인

통일교회에서 지금 말하고 있는 식구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예수님의 뜻을 상속받은 하늘 앞에 참다운 아들딸의 입장에서 부르는 식구요, 형제요, 하나의 가족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우리 식구 식구끼리, 형제 형제끼리는 어떻게 나가야 되느냐? 예수님은 태어나는 그 시간서부터 자라나는 생활 가운데 있어서…. 예수님은 물론 동생도 있었습니다. 동생도 있었고 부모도 있었지만 부모와 형제를 대해서 예수님은 진정 하늘이 원하는 부모요, 하늘이 원하는 형제로서 생각했느냐 하면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념적인 부모를 생각하였고 이념적인 형제를 생각하였지만 그 당시에 있어서 예수 자신을 중심삼고 볼 때, 과연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동생,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됐느냐 하면 못 됐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가 진정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예수님을 참다운 아들로서 키워 줄 수 있는 지상의 부모가 되었느냐 하면 못 됐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늘 앞에 참다운 아들의 입장에 있었지만서도 예수 앞에 나타난 요셉과 마리아는 참다운 부모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은 이 부모의 입장을 대신하여 다시 재림이라는 이념적인 기준을 제시해 놓고 2천 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미래에 남겨 놓고 섭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당시에 아들의 사명을 완결짓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의 뜻을 받들었다면 참다운 아들로서의 기반을 완전히 닦는 동시에 참다운 형제의 기반을 닦을 수 있고, 참다운 식구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부모들이 책임 못한 그 자리에까지, 예수 자신이 하늘의 공인을 받아 가지고 부모의 자리에까지 이것을 연결시켜 나갔더라면 재림이라는 명사가 필요 없을 것인데 예수님이 부모의 자리를 완결짓고 가지 못하였던 연고로 재림이라는 명사를 세워 '나는 신랑이요, 너희들은 신부라'는 말을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남겨 놓고 갔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 예수님이 영과 육을 합하여서 참다운 효자의 도리를, 참다운 효녀의 도리를, 참다운 형제의 도리를, 참다운 식구의 도리를 세워 놨느냐 하면 세워 놓지 못했다 이겁니다.

죽고 감으로 말미암아, 육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의 참다운 효자의 도리를 닦아 놓고, 참다운 효녀의 길을 개척해 놓고, 참다운 형제 참다운 식구의 도리를 개척했지만서도 영육을 합한 참다운 식구의 도리, 참다운 형제의 도리는 개척해 놓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이 도리를 지금까지 2천 년 연장시켜 섭리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 위에 오시는 주님은 어떤 사명을 해야 되느냐? 먼저 영육을 합하여서 참다운 형제의 도리를 세워야 되고 참다운 식구의 도리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예수님이,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참다운 동생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사랑하지 못했던 그런 동생, 즉 예수님이 사랑할 수 있는 동생이 이 지구 혹은 이 땅 위의 종말 세계에 있어서 이 땅 위의 신도들 가운데 태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또 예수님이 사랑하지 못했던 누나, 혹은 사랑하지 못했던 식구로서의 그러한 존재들이 오늘 끝날에 있어서 갖추어지지 않고는 오시는 주님이 부모의 인연을 완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참다운 식구와 참다운 형제의 기반을 마련하여 옛날 예수님이 살던 당시의 동생이 되고, 혹은 누나가 되고, 혹은 형님이 되고, 혹은 아저씨가 되고, 혹은 친척이 되어서 하나의 대가족, 하나의 족속을 위주로 한 하나의 대가족권을 이루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예수 앞에 참다운 식구가 되어 있지 못하고 참다운 형제가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이 땅 위에 오신 주님은 무얼 해야 되느냐? 먼저 참다운 식구를 찾아 헤매야 되고, 참다운 형제를 찾아 헤매야 합니다. 그래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참다운 식구를 찾으려 해도 식구가 없으니, 참다운 식구가 이 땅 위에 준비되어 있지 않은 연고로 예수의 동생의 사명과 예수의 형님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서 살아생전 동생에 대한 한과 형님을 모셔 보지 못한 한과 누이동생을 가져 보지 못한 한과 참다운 식구를 가져 보지 못한 한을 품고 갔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그런 전반적인 내용의 요건들을 이 지상에 먼저 만들어 놓지 않고는 참다운 부모의 자리에 나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참다운 형제적인 인연 가운데서 과연 우리가 하나이니 하나의 부모를 모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이런 단결된 하나의 가족 형태를 갖추어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갖추어지지 못한 연고로 오시는 주님은 이 가족 기반을 재차 닦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2천 년 동안 준비한 기독교가 그 기반을 못 닦은 연고로 오시는 주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을 다시 개인적으로 닦아야 할 입장에 서 있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종으로서, 양자로서 양자의 과정을 거쳐 직계 자녀, 종의 시대와 양자의 시대와 직계 자녀의 시대, 이런 역사적인 모든 것, 6천년 동안 복귀하여 탕감해 온 모든 종적 역사를 오늘날 이 시대에 있어서 재차 탕감해야 합니다. 종의 복귀역사, 양자의 복귀역사, 직계 아들의 복귀역사의 전체적인 모든 내용의 요건들을 지상에 와서 일대에 완전히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그런 참다운 식구, 참다운 형제, 참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야 되는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참다운 식구요, 참다운 형제요, 참다운 가정으로서 기독교를 중심삼고 예수를 참다운 형님 오빠로 모시고 그들은 예수의 참다운 동생이 되고 혹은 예수의 참다운 누이동생이 되어, 하나의 하나님을 위주로 한 하나의 형제와 식구와 같은 입장의 기독교가 돼 있으면 문제는 어렵지 않다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하게 될 때는 이러한 모든 전체의 역사를 새로이 해야 합니다. 새로이 하는 데는 대번에 하늘의 아들딸이요, 하늘의 형제요, 하늘의 식구의 자리에 세울 수 없는 연고로 사탄세계에 있는 사탄의 아들딸들을 빼앗아 가지고 종으로서 훈련을 시키고, 양자로서 훈련을 시키고, 직계의 자녀로서 훈련시켜서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엄청난 사명이 오시는 주님 앞에 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가 책임 못 하게 될 때는 무한한 슬픈 역사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날 통일교회는 무얼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통일교회는 무엇을 하기 위해서 모였느냐? 기독교를 위주로 하여 참다운 형제 참다운 식구가 되었으면, 그것을 위주로 하여 오시는 주님은 하늘 앞에 참다운 부모를 중심하여 하나의 대가족을 편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오시는 주님을 받지 않으면 이와 같은 길을 다시 가야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길을 재차 엮어 가지고 기독교가 받지 않아도 오시는 주님 앞에 참다운 종이 되고, 참다운 양자가 되고, 참다운 직계 자녀가 되어서 본연의 대가족을 다시 상속받고 세우자는 이런 목적권 내에서 나아가는 것이 현재의 통일교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고생 가운데서 종의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는 것이요, 양자의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는 것이요, 직계 자녀의 입장에서 시련받아야 할 사람도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역사노정을 거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