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눈물과 부활 1970년 06월 2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8 Search Speeches

세계를 복귀하기 위해 눈물 흘려야 할 우리"

내 뜻은 개인을 중심삼은 죄악의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하는 뜻이지만, 아버지의 뜻은 역사를 넘고 그 시대를 넘어 미래를 넘어설 수 있고 오늘의 민족 감정과 세계 감정을 넘어선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미래에 찾아올 새로운 국가,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면서 죽음길을 갈 때에 흘린 피와 땀은 자기를 위해 흘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라고 말할 때의 그 용서는 이 우주가 구원되는 날까지 통하는 것입니다. 그런 용서의 법칙하에 전시대에 왔다갔던 선지선열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아량을 가지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가 뜻을 알아 가지고 가는 이 길은 내가 구원받고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것은 뜻이 아닙니다. 뜻을 따라가면서 내가 가정을 필요로 한 것은 세계 인류 앞에 공헌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기 위한 것이요, 종족을 필요로 하는 것은 민족과 국가와 세계 앞에 공헌할 수 있는 종족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서서 이 사상과 일치되어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세계가 망하더라도 망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 눈물이 끊이더라도 그 단체에서는 눈물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복귀를 바라보며 그것을 추구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눈물이 끊일 수 없고, 그렇게 생활할 것을 다짐하면서 세계의 부활을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의 대가를 치르고라도 가겠다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내 개인으로 부족하거든 내 가정을 동원하고. 내 가정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증족, 자기 종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민족, 자기 민족으로 부족하거든 자기 국가를 동원하여 희생시켜서라도 가겠다고 몸부림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 조상이 그렇게 갔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갔고, 또 그분의 구원이 그렇기 때문에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입장에서 국가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고. 종족적 제물이 되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제물이 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눈물은 변하여 환희의 부할권으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변하여 승리의 부활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족의 입장에서 제물되어 죽었다고 해서 종족적인 부활이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100퍼센트 부활하여 내일을 위해 싸울 수 있는 부활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를 향하여 자유 분망스럽게 전파할 수 있는 국가적인 부활까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최후의 부활된 자리까지 가야 할 것이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눈물 짓는 것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자기를 위해 눈물지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가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라를 위하고 세계를 위하여 몽땅 털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가 되면 내 모든 것을 미련없이 100퍼센트 천륜 앞에 드려야 합니다. 젊고 꽃다운 청춘시대의 기백으로 온 천하를 거머쥐어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절규하는 간곡한 심정으로 바칠 수 있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 앞에 승리의 결과를 바쳐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럴 수 있는 한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에 멍으로 남습니다. 그런 사연은 그 후손을 통하여 어느 한때 기필코 희생을 치러야 하는데, 그 후손이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사명을 받는 날은 선조와 후손이 한데 묶여지는 날입니다. 거기서 조상과 후손,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에서 아담과 가인이 하나되지 못하였던 것을 역사시대를 넘어 하나되게 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듯 민족과 세계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준을 결정하지 못했거나 그럴 수 있는 나 자신도 되지 못하거나 그럴 수 있는 후손까지 남기지 못하면 운명하는 자리에서 자기의 모든 과거를 미루어 볼 때에 그는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이라도 자신이 더 지어 내지 못한 눈물이 있거든 그 눈물로 아들딸의 복을 빌어 주기보다는 세계 인류의 복을 빌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는 자신이 되어야 하며, 눈물로 회개의 생활을 거쳐 다시 용서를 바라고 동시에 축복을 해주고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으로서 최후에 가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