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집: 내일을 맞자 1970년 07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5 Search Speeches

그 나라를 찾아 세우려 했던 예수님의 슬""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33)"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그 의라는 것은 행동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기 않고는 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리에서 희생해야 되느냐? 하나님과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자리, 즉 종적인 역사에 있어서 수직으로 흐르는 직계의 심정을 상속받아 가지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개인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종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수많은 민족을 그 나라 대신 사랑하고, 하나님이 찾아 나오시는 그 나라를 위해서 수많은 나라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랑의 전통의 인연을 가져 가지고 그 나라를 사랑하기 위해서 희생의 길로 나가야만 의인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이지, 그것 외에는 의인의 입장을 결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죽더라도 절대적으로 정의에 입적한 생활을 해야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한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나라를 사랑할래야 사랑할 수 없는 입장에 섰습니다. 마음으로는 사랑했지만, 실제로 사랑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되지 못했기에 예수는 나라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가 이미 이즈러졌고, 민족이 이즈러졌으며, 백성이 이즈러졌습니다. 더욱이 12사도들까지 전부 다 이즈러져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붕괴되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비참한 말입니다. 그 말이 바로 역사를 통해 지금까지 엮어져 온 하나님의 사연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것을 느끼며 낙심하기 보다는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하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 30여년의 생애를 통한 짧은 과정에서 나라를 갖지 못한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로되, 아버님은 태초부터 역사시대의 배후에서 복귀의 사명을 주도적으로 책임지시고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사랑하고 싶은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지가 얼마나 불쌍한가? 그 나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역사를 이끌어 나오시면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데도 불구하고 나라를 갖지 못한 아버님은 얼마나 슬플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아버지여!' 하고 부르며 하나님을 위하여 기도하는 자리에 섰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표한 아들이 아닐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여기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