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수난의 정상에서 1971년 05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50 Search Speeches

참된 가정은 하나님과 만물의 희망이 '심

오늘날 타락의 후손인 우리에게는 세상의 부모가 있습니다. 또 세상의 오빠도 있으며 세상의 남편도 있습니다. 이러한 타락권내에서 맺어진 부모나 형제, 그리고 부부의 관계라는 것은 타락된 사랑을 근거로 해서 맺어지고 이루어진 가정적 기틀이므로 여기에는 하나님이 관계를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타락한 혈통적 부부의 인연과 형제의 인연, 그리고 부자의 인연을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밟고 넘어서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말로서뿐만 아니라 심정으로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사실적으로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입장에 있는.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에 있는 우리라 할진대는, 그 정리를 두고 볼 때 세상의 부자관계의 정리 이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은 형제관계를 두고 볼 때, 세상의 형제관계 이상 되는 경지를 찾아 볼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또한 부부의 인연에 있어서도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타락한 인류권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가정의 대표가 부부인데, 이러한 세상의 부부 전체와 오늘날 여러분의 부부를 두고 볼 때, 여러분의 부부는 타락한 사탄세계의 부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계의 부부 전체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부부와 바꿀 수 있느냐 하면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과 사탄세계의 인류 전체와 바꿀 수 있겠느냐?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과 이 세상과 바꿀수 있겠느냐?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 사망의 사탄세계의 인류보다도 귀한 아들딸, 사탄세계의 그 어떤 가정보다도 더 귀한 가정을 만들어 놓지 않고는 하나님의 위신과 체면을 갖춘 자리에서 '이는 내 아들이다. 내 딸이다' 혹은 '내가 축복한 가정이다' 하는 말도 할 수 없는 것이요, 그런 위신을 가지고 대할 수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냐? 만일에 그런 자리에 서 있지 못하다면 사탄보다 못한 가정을 가진 하나님의 신세, 사탄보다 못한 형제를 가진 하나님의 입장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가 될 수 없습니다.

창조의 원칙을 두고 보면, 부모는 최고의 영광된 자리에서 자녀를 사랑 해야 되고, 자녀들은 하나님의 축복권내에서 부부를 이루어 이 땅 위의 만유의 중심이 되어 가지고 온 피조물을 축복해 주고 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중심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해 보게 될때, 이러한 가정이야말로 우주의 중심이요, 하나님이 바라시는 소망의 중심이요. 만물이 바라는 절대적인 희망의 중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을 이 땅 위에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이 바로 타락입니다. 이 타락한 세상을 부정하고 이러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 가는 것이 복귀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아야 됩니다.

원래 에덴 동산에서 이루었어야 할 이 뜻을 에덴 동산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타락된 사탄의 소굴권내에서 이루어야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몇천 배의 시련을 통한 배후의 터전을 닦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이루어진 가정은 타락권내에서 이루어진 가정이기 때문에, 그 가정을 에덴에서 타락하지 않고 이룬 것과 같은 기쁨의 가정으로 맞을 수 있는 입장에 서기 전에는 하나님은 기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러한 가정을 내새우지 않고는 오늘날 사탄 세계를 굴복시키겠다고 나설 수 없는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됩니다.

이 자리가 하나님의 내정적, 심정적 입장에서 볼 때, 얼마나 참기 어렵고 얼마나 기가 막힌 자리겠느냐?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해 주었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복해 준 가정의 자리가 사탄세계에 둘러싸인 자리요, 사탄세계의 반대를 받고 참소를 받고 침범을 받을 수 있는 자리이므로, 그 가정을 대하여 타락권을 맛보지 못했던 자유의 동산 에덴에서 이루어진 가정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심정을 찾아야 하는 하나님의 고충이 얼마나 크겠느냐? 오늘날 우리들은 이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의 고충을 풀기는커녕 그 반대되는 탕감의 역로를 거쳐 나오고 있는 것이 아버지가 처해 있는 입장인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