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집: 근본복귀 1971년 01월 10일, 한국 강릉교회 Page #95 Search Speeches

다말을 통한 복'복귀섭리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가 되는 야곱에게 유다라는 아들이 있지요? 유다지파를 형성한 유다는 야곱의 넷째 아들입니다. 넷째란 동서남북, 춘하추동이라고 하듯이 넷째에서부터 사방의 기준이 나타나고 봄절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넷째 아들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다지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조상 중에 유다가 어떠한지 가만히 보세요. 유다에게 며느리가 있었어요. 누군지 알아요? 다말입니다. 다말이 유다의 맏아들에게 시집을 왔는데 그 맏아들이 후손도 없이 죽었습니다. 옛날 유대 나라에서는 축복 받은 혈통은 끊어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것은 여자로서의 도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축복을 망치는 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나라 법에는 형님이 아기를 낳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그 형수를 동생이 인계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축복받은 여자를 버려서는 안 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외방에 내보내도 안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그럴게 아녜요? 사탄편에 내보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그 동생도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말은 자기 일대에 축복받은 혈족을 잇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명을 잃는 것보다도 더 고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죽더라도 어떻게든 축복받은 혈족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님의 축복을 남길 수 있는 그 길을 추구하는 마음이 다말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이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체면 불구하고, 죽고 사는 것에 개의치 않고 생명을 걸고 간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입장에 섰기 때문에 큰일났다고 생각해서 어떻게 했느냐 하면 자기 시아버지와 상대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시아버지가 농사일로 왔다갔다하는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서 기생처럼 가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유인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아버지와 하나되어 가지고 아기를 배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성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그랬느냐?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결과가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도가 풀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과 그러한 인연을 맺고는 자기의 도장을 주고 헤어졌습니다. 시아버지 유다는 길거리에서 그런 관계를 가졌지만 그 상대가 며느리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니 다말에 대해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과부가 아기를 배었으니 죽이라고 야단했습니다. 이렇게 되니 다말은 죽어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때 유다는 족장이었습니다. 그 소문은 유다에게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명령에 따라 죽이려 하니 다말은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나는 비법(非法)으로 그 일을 행한 것이 아니며, 이 아기의 주인은 이러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테이프 끊김)

다말은 애기를 낳게 됩니다. 그 애기는 쌍동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쌍동이가 복중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이 복중에서 싸우므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고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말의 복중에서도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애기를 낳은 이후에 교체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복중에서 교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 38장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유다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첫째가 베레스요, 그 다음이 세라입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 형이 먼저 나오기 위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래서 그 손에 빨간 줄을 매었습니다. 이것은 공산당이 먼저 나올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게 될 때는 공산당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동생 되는 베레스가 형을 밀쳐 버리고 먼저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복중싸움입니다. 알겠어요?

태중에서 형을 밀치고 동생 베레스가 형으로 태어남으로 해서 형과 동생을 바꿔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승리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사람을 거꾸로 태중에 집어 넣어 태중에서 싸워 가지고 형제를 바꿔치기한 결과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성경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태중에서 이겼어요, 못 이겼어요? 이겼기 때문에 이 태중을 통하여, 승리한 그 기반을 통하여 정조를 가지고 생명을 바칠 것을 각오하면서 그 사상을 이어받은 여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여자가 잉태하면 사탄은 참소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