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집: 주관성 복귀 1971년 10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61 Search Speeches

우리부터 서로 사'하자

그러면 본성적 세계 기반은 어디에서 나올 것이냐? 그 세계 기반이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나와야 되는데, 세계를 위하여 우는 사람이요 하늘을 위하여 우는 사람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를 위하여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우는 환경밖에, 그 길이 아니고는 갈 길이 없다고 하며 그 길을 자처해서 가는 사람, 그런 무리가 아니고는 금후의 이 길을 헤쳐 나가 해방적인 권한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하지 않고는 될 수가 없기 때문에, 완전한 해방과 최후의 해방의 기수가 되어야 되고 완전 건국, 최후의 건국의 용사가 되어야 되기 때문에 이들은 누구보다도 신음에 신음의 과정을 거쳐야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억천만 사탄이 공격할 것입니다. 악의 권속에 속해 있는 영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땅 위에 있는 악당의 후손들까지도 모두 여기에 반기를 들 것입니다. 그러나 반기를 드는 그 고난까지도 소화시키고 넘어 최후의 승리의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이, 하늘을 신봉하고 하늘의 정통적인 사상을 이어받아 절대적인 신뢰의 기준을 세워 나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참아들딸의 도리를 세우기를 바라고 나가는 그들이 가야 할 지극한 정상적인 길이 아니냐. 그 한계선까지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지하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공산당식의 그런 지하 조직이 아닙니다. 그보다 몇천 배 강력한 지하 활동을 마음 세계에…. 그 누구도 모르는 거라구요. 외적으로는 모르는 거라구요. 마음에 끓어 오르고 마음에 불타오르는 정열과 더불어 하늘나라의 해방의 권한을 소망하고 승리의 주관권을 바라보면서 활동한다는 거예요. 그때에 사랑할 수 있는 남편과 아내를, 그때에 가질 수 있는 가정과 종족과 민족과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 하나님 앞에 승리의 천국을 봉헌해 드릴 수 있는 그날이 언제 오겠느냐?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소원의 지점, 목적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어느 정도까지 올라왔느냐? 통일교회는 이제 통일족속을 이루었습니다. 내가 엊그제도 얘기했지만 지금까지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해 찾아온 우리 통일교회가 오늘날 이러한 결실을 맺기까지 얼마나… 일 년 장초도 팔 년 풍파를 겪는다고 했거늘, 오늘날 섭리도상에 있어서 이만한 무리가 하나의 종족권을 이루었다는 것은 지극히 귀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세계 이상의 가치로 보아 주고 평가해 줄 수 있는 인연으로 꽉 짜여져야 됩니다. 꽉 결속된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가 그러한 터전이 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이라도 하나 있어야 됩니다. 세계에 그런 것이 없으면 우리가 그런 터전이 되어야 돼요.

선생님은 식구를 비난하고 식구를 모해하는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입니다. 세계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랑을 어디서부터 해야 되느냐? 우리끼리부터 해야 되는 거라구요. 동서남북에서 가려져 가지고 하나의 인연을 따라 모인 우리 끼리끼리 서로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보지 않으면 못 사는 거라구요.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구요. 이런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통일교회는 그래도 이 악한 세상과는 다른 무엇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한 사람이 이곳에 찾아오기까지 그 배후의 역사적인 수고가 크다구요. 수많은 선조들의 공적이 쌓여진 것입니다. 여러분, 가을에 결실을 거두어 들이는 주인이 낫질을 하는 데는 노래가 흘러 나가는 것입니다. 찬양의 노래, 지금 가을에 수고하는 것을 다 잊어 버릴 수 있는 찬양의 노랫가락이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확을 하면서 `아이고, 이거 힘들어서 해먹겠나!' 하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추수의 낫질을 하는 농군의 일터는 일년의 수고가 영광으로 드러나는 그날을 기쁘게 맞을 수 있는 자리지 신음과 비통과 탄식으로 열매맺히는 자리가 아니라고요. 고통과 수고는 다 흘러가 버리고 도리어 그 낫질에서 콧노래가 흘러 나오는, 희망의 내일이 기약되는 자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두어질 수 있는 입장, 거두어진 알곡의 입장에 있는 우리가 끼리끼리 당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행복의 요인으로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터전을 넓혀서 국민화시키고 국가화시키고 세계화시킬 때까지 그 주체적인 정신이 일원화된 형태를 벗어나지 않아야만, 그러한 터전을 통해서 세계에 평화의 천국이 연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너와 나의 삼각권내에서 제3자의 동서남북을 중심삼고 넷이 딱 벌려 서게 되면, 여기에는 이의가 없는 것입니다. 결속의 동기는 거기에서 마련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