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집: 참을 찾아가는 길 1964년 03월 26일, 한국 전주교회 Page #281 Search Speeches

하나님을 통곡시킬 수 있" 자리

그러니 아버지는 얼마나 불쌍한 아버지입니까? 이 길을 찾아가기 위해서 눈물의 골짜기를 갔고, 몰림의 자리 처참한 자리를 갔고, 비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눈보라 치는 날에도 아들딸들을 얼마나 찾아 헤매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세상에 나가 전도하게 될 때 서글픈 날도 있을 것이고, 혹은 하염없는 눈물이 자기 눈앞을 가리어 앞을 바라보기에 캄캄하고 자기의 몸을 가눌 수 없는 자리에 부딪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적마다 여러분들은 `이것은 내가 아닙니다. 나 아무개가 아닙니다. 당신도 이와 같은 자리를 몇만 번 몇천만 번을 당하였습니다. 내가 아닙니다. 나로서 이것을 당하지 말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이런 환란을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 환란을 대신하여 내가 탕감의 제물로 올라서 이런 환란도상에 서서 이러니, 나는 이렇지만 당신은 부디 그런 자리에 서지 마시오' 하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할 줄 아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라서 여러분 앞에 고난의 길, 핍박의 길을 가라고 하는 거예요.

이 불초한 것이 하늘의 거룩한 성지에 아버지 대신 눈물을 떨어뜨릴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 황공하다는 것입니다. 이 팔이 떨어지고 이 몸이 녹아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거룩한 성지에 아버지의 눈물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죽음을 대신하여 이 내 한 몸이 쓰러질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복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굶주린 자리에 서게 될 때 그것은 내가 굶주리는 것이 아니예요. `이 굶주림은 3천만을 대신한 것이요, 3천만을 찾아오는 아버지를 대신한 것이요. 30억에 가까운 이 인류가 그런 도탄 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대신하여 내가 이런 자리에 섰사오니, 그를 찾아가는 아버지의 신세가 이런 것이어늘 오늘날 나로 하여금 사탄 앞에 원수의 조건을 세워 이것을 탕감할 수 있는 하나의 제물로 나를 세워 주십시오 '이렇게 울부짖고 나서는 무리가 되자고 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인것입니다.

`몰려오는 폭풍우야 불어와라, 시베리아의 모진 원수의 바람결이 총알같이 삼천만을 쓸어나갈 수 있게 불어와라!' 이러면서 대신 눈물지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눈물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있으면 이는, 그런 자리에 있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이는…. 그가 그런 자리에 눈물 떨어뜨릴 적마다 하나님이 통곡하시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그런 자리에 서면 선생님도 통곡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지방에 개척 전도 내보내고 내가 밥을 먹다가 그런 걸 느끼면서 운 적이 많아요. 하늘의 백성들이 어찌하여 이런 고난 길을 기는가? 도탄 중에서 환난 가운데서 몰아내는 무리가 어찌하여 환란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민족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개척하고, 예수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못했던 것, 예수 일대의 세례 요한의 죄까지 탕감해야 되고 다시 이제까지의 민족적인 책임을 탕감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의 길이 이렇게 겹쳐 나올걸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들은 이런 걸 느끼면서,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의 길이 이 민족 앞에 남아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자체 내에도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부디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하늘을 배신하지 말라는 거예요. 입술을 혀를 깨물면서라도 하늘을 무심타고 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이것이 통일의 정신이예요. 이것이 이 민족을 대신하여 하늘 앞에 제사장의 책임을 대신하고 나선 우리의 길인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어요.

그런 자리에서, 밥을 못 먹어 눈물을 흘리는 자리가 있다 할진댄 나는 울지 않더라도 하늘은 눈물을 흘린다는 거예요. 찬방서 새우잠을 자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쉬지를 못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였거늘, 대자대비하고 무궁무진한 사랑의 주인공이라 하였거늘, 당신을 위하여 그런 눈물을 흘리고, 당신을 위하여 염려하여 우는 자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간장이 녹아 나겠나요, 안 녹아 나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