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집: 선악의 분기점 1969년 10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6 Search Speeches

선은 하나님과 사'의 관계를 맺지 않고" 성립되지 않"다

개인은 개인대로 배반했고 가정은 가정대로 배반했고 민족은 민족대로 배반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가운데 오늘날 통일의 기치를 들고 나선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런 것을 근본적으로 제거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무엇이냐? 하나님을 생각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도, 역사시대에 하나님을 생각한 어느 성인 현철보다도 더 생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신경 세포의 종합적인 감각, 인식 관념을 중심삼고 느낄 수 있는 감각 전체를 기울여 생활환경에서 언제 어느 때든지, 한 순간도 양보함 없이 하늘을 지극히 사랑하고 하늘만을 위하고, 하늘에서 시작하여 하늘에서 살고 하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선에서 시작하여 선에서 살고 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버이의 입장에 서 가지고 자식을 향해 사랑의 자극을 느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사랑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본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만물을 지어 놓고 보기에 선하다고 하신 것을 보게 될 때, 선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지 않고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서는 장한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신 기원을 가졌기 때문에 그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기준이 성립되지 않는 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고 요구의 대상으로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마음을 중심삼고 인류를 찾아 나오시는 걸음보다 인류가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정하고 불쌍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불쌍하게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존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모양이라도 갖추고, 형상적이로라도 하나님께서 찾아 나가시는 방향에 상대적인 형태를 갖춘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갓난 아기는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부모를 모릅니다. 하지만 석 달 정도 지나게 되면 반겨 주는 어머니의 얼굴을 대해서 미소를 지으며 호응하게 됩니다. 자기가 어머니인 줄로 모르고 어머니인 자기의 사랑도 모르지만 상대적인 입장에 호응해 주는 아기의 미소에 어머니는 최고의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기는 알지 못하지만 심정적 인연으로 연결된 줄을 통하여서 전체의 가치 이상의 사랑을 퍼붓는 부모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가졌지만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했다 할 수 있는 체험의 기준을 못가졌습니다. 인연을 통하여서는 하나님 앞에 아들딸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인연 때문에 아버지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더라도 그런 관계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은 뼛골에 사무치는 사랑의 인연을 갖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입장에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혀져 있는 이런 인간들이 그러한 하나님 앞에 상대적 모양이라도 갖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마음 가운데 잠겨져 있는 사랑을 몽땅 퍼부으실 것입니다.

더욱이나 여러분이 하늘을 알고 하늘길을 출발하게 될 때는, 어린아이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은혜와 사랑을 몽땅 퍼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제일이라고 느껴지게 해주십니다. `천상천하에 나만이 제일이야' 할 수 있도록 추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까지 올리려고 하시는 것이냐? 아무것도 모르지만 여기에는 `나만이 제일이다'는 관념을 중심삼고 `너는 네 민족을 위해서 대표적으로 택했다. 세계에서도 너 하나밖에 없다'라고 권고하시며 그 자리까지 올려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퍼뜩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러한 약속을 해주시는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만에요. 그것은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맺자 하는 말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약속이 있으면 그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약속에 대비될 수 있는 사랑의 인연을 전부 끌어다 선에 부합시켜 가지고, 그것을 일치화시킬 수 있는, 점령할 수 있는, 주관의 내용을 결정할 수있는 기원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인연은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사랑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약속자체만을 추구하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아기가 부모로부터 잘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해서 그 표준을 중심삼고 행동하고 행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잘한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바라는 사랑의 마음에 접근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