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집: 가야 할 예수의 노정 1971년 10월 3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40 Search Speeches

예수가 가야 했던 길

그러면 여기서 가야 할 예수의 노정이라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가 가야 할 길은 어떠한 길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독생자의 길을 지키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데 있어서는 소년시대, 청년시대에만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장년시대, 노년시대를 거쳐 이 땅 위에서 사랑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저세계에 가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독생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받아야 할 입장에 서서 그 길을 다 가야 하는 것이 예수가 가야 할 노정이 아니냐.

예수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섰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야 되는 것이요, 자라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야 되는 것이요, 철이 들어 가지고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환경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청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장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고, 노년시대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생애노정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역시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예수가 날 때부터 생애노정을 통해서 사랑하셨지만, 예수를 사랑했던 인간을 대표한 개인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런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 교인들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한 개인이 누구였더뇨 할 때 요셉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는 물론 어머니의 입장에서 사랑한 것은 틀림없었겠지만, 사랑하는 데 있어서는 인간을 중심삼은 입장에서 사랑하기가 쉬웠지 천정을 대표한 자리에 서서 나면서부터 생애 노정을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사랑할 수 있는 어머니의 자리에 섰느냐? 그렇게 못 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칫집에서 그 어머니를 대해서 예수가 한 말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인간으로서 하지 못할 그런 말을 한 것은 그 누구 앞에 내놓을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적 배경을 두고 보면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한 단계에서 태어난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는 오늘날 세상적으로 보면 의붓아버지입니다. 의붓아버지 품에서 자라고 있는 예수님의 입장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를 두고 보면 예수란 존재는 언제나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보다는 도리어 의심의 존재요, 마음을 혹은 심정세계를 엇갈리게 하는 존재로 자라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었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기뻐할 수 있는 어머니를 맞았느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사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언제나 트러블이 생기고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많이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심정을 중심삼고 볼 때, 예수가 천정의 인연을 대표할 수 있는 아들로 태어났으면 그 천정을 예수 자신에게만 미쳐지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받는 하나님의 사랑을 예수 자신에게만 멈춰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횡적으로 아버지면 아버지를 중심삼고 연결시켜야 되고, 어머니면 어머니를 중심삼고 완전히 연결시켜야 됩니다. 부모를 중심삼고 사랑을 연결시킴과 동시에 형제를 중심삼고 연결시키고, 친척, 교회, 이스라엘 나라까지 그 사랑을 횡적으로 연결시켰더라면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과연 정면적으로 인간을 대해서 '내사랑이 이렇다' 해 가지고 그 사랑을 전부 다 퍼부었던 사람이 있었느냐할 때, 우리가 성경을 보면 서러운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30세에 공생애노정을 나서서 제자들을 찾아다닌 예수의 입장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혹은 열두 제자를 볼 때, 그들이 과연 인간세상에서 예수가 사랑하고 싶었던 그리움의 대상들로서 모여진 제자였더냐? 그렇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제자들은 그 시대에 있어서 상류계급으로서 어떠한 권위를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외적 환경에 있어서 존경받을 수 있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공생애노정을 거칠 때, 세리의 친구요, 먹고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인들과 더불어 동거하기를 즐겨하고 같이하기를 즐겨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수님이 대하던 무리는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수 있는 대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에 멸시받던 세리와 예수의 어부들이 친구의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 일파들은 전부가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냐. 여러분이 성경을 봐서 잘 아는 바입니다.

12사도들이 오늘날에 와서는 우리가 존경할 수 있는 입장에 섰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과정에 있어서 기독교의 발전과 더불어 기독교 문화권이 발전함에 따라 그 비례적인 가치로 세워진 기준이지 예수님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