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인내와 극복 1971년 05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42 Search Speeches

세상 사람보다 3배 이상 참아야

극복이 나쁜 것이냐? 참는 것이 나쁜 것이냐? 엊그제도 목사 원리공청회를 했는데, 120여명이 듣고 갔지만, 그들이 '우리가 120명 넘게 와가지고 말씀을 듣는데 문선생님이 왜 나타나지 않느냐'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들이 하자는 대로 하나요? 자기들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지. 손님들이 무슨 수작이예요? 손님이 주인 노릇을 하겠다면 그것은 틀린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법이라구요. 다르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문선생 하면 '어허……'하더니만, 요즘에는 관심이 많아져서 선생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혹 낮에 드나들고 할 때 본 사람은 '오늘 문선생님을 보았으니 여기에 나타나겠지' 하고 기다린다는 거예요. 나타나긴 뭘 나타납니까?(웃음)

어제 어느 신문사에서 '통일교회가 이제 그만한 기반을 닦았으면 이제 문선생이 자가선전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며 취재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너희들 돈 벌어 주는 일 안 하겠다. 선전하려면 내가 만들어서 하지' 라고 했습니다.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대로 놀아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구요. 신문기자들이 통일교회 문선생을 취재해요? 이놈의 자식들, 자기들 원하는 대로 취재해? 언제는 헐뜯고 이제 와서는 뭐가 어째? 지금까지 내가 그런 사람은 만난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갔다 왔을 때도 취재하러 왔던 사람이 사흘 나흘을 기다렸지만 못 만나고 갔습니다. 내가 선전을 하려면 우리 언론기관을 만들어서 하지요. 사탄세계 언론기관은 기분 나쁘다는 거예요. 그들은 나를 때려잡고 헐뜯기 위해서 선전했지 좋은 선전을 해주었어요? 나 싫다 이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선생님은 누가 '당신이 나를 만나 주면 통일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소' 하더라도 그런 사람을 만나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림없으니 가 봐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좀 달라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다 별스럽지 않아요? 별스러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아, 못 만나서 기분 나쁘다' 하게 안 되어 있습니다. 더 궁금증에 사로잡혀 관심을 집중시키게 돼 있지요.

이제 내가 한번 목사 총회 한다고 하게 되면 왔던 사람은 다 올 거라구요. 내가 직접 나가서 얘기할 테니 오라고 하면, 왔다 갔던 사람이 천 명이면 천 명이 다 모일 것입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하면 될 텐데 뭐하러 원리공청회 할 때마다 나갑니까?(웃음)

선생님은 통일교회 교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자 한다고 해서 절대 안믿습니다. 누가 뭐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해서 후퇴하거나 양보하지 않습니다. 코방귀도 뀌지 않아요. 선생님이 고집이 있다면 누구보다도 고집이 있고 악착 같다면 누구보다도 악착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미지의 세계를 이만큼 개발해 나온 것입니다. 이제는 천하가 다 헤엄칠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천하가 빠져 죽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수영장이 되어 있고 벌판에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을 닦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뛰노는 것만을 제일로 아느냐? 그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라구요. 운동하는 그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수는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통일교회 교인들도 세계적인 모든 것을 알게 되려면 아직 좀더 극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입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는 거라구요. 눈이 있어 보았다고 해서 다 보았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귀가 있어 들었다고 해서 다들었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이상으로 보고 들을 때가 온다는 겁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 문선생은 사탄보다 더 포악했대' 어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라도 그 이상 되어야지요. 세계의 3분의 1을 거느리고도 아무도 상대 안할수있는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구요. 통일교회 문선생을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거예요. 보기에는 못난 사람처럼 가만히 있지만 속에 무슨 배포를 품고 다니는 줄 알아요? 아직은 선생님이 말을 하지 않는 거라구요. 그 세계까지는 멀다는 거예요.

지금 이 정도에서 머리를 들고 '아이고, 내 아들딸 죽소'라고 하는데 죽겠으면 죽으라는 겁니다. 네가 죽지 뜻이 죽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댓 사람 죽더라도 뜻을 살리고, 그 죽는 사람 가운데서 뜻을 위한 충신한 사람을 남기고자 하는 것이 선생님의 소신입니다. 열 사람이 죽더라도 그 이상의 내용을 중심삼고 극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붙들고 열 사람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복귀섭리가 그렇잖아요? 노아 할아버지를 보라구요. 노아 가정 한 가정을 중심삼고 심판하신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인내하는 데 있어서 사탄세계의 3배 이상 하라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세계에서 3배 이상의 수난을 당하게 되면 그 악은 제거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까지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아라, 견디라는 것입니다. 그 정상을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3단계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3일 수련이 있지요? 내가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런 때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구. 이것이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더니 진짜 십자가의 길을 맛볼 때가 왔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