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집: 참된 식구가 되자 1965년 12월 07일, 한국 춘천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이 민족과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맨 '창-서부터 수고해야

오늘날 통일교회를 중심삼고 많이 왔습니다. 개인적이요, 가정적이요, 종족적이요, 민족적인 과정을 거쳐 이 국가 민족을 우리가 책임지고 싸워야 되겠다는 이런 신념….

여러분들, 이 민족을 바라볼 때 이 민족은 나라에 대하여 자신을 다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에 대한 애착심을 다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부모에 대한 애착심도 자식에 대한 애착심도 다 중요시하지 않는 때라는 겁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렸어요. 나라에 대한 것도, 의리니 뭐니 하는 것도 모든 걸 잃어버렸어요.

또 그다음에는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이러한 민족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어떻게 하늘이 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그런 애착심을 일으켜 가지고 하늘 백성을 만들 것이냐? 여러분 그거 생각해 봤어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자기 선조를 탄하여 '어찌하여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비참하게 일생 동안 호미자루를 쥐게 만들었노' 이러는데, 이래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선은 도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예요. 선은 궁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예요. 도리어 도시에 악이 더 많은 것이요, 도리어 궁전에 악이 더 많은 것입니다. 농촌에 더 순진한 선이 있는 거라구요. 선을 안 사람은 빈부귀천을 초월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선을 향해서는 낮은 자리나 천한 자리나 개의치 않고 지극히 악한 궁전보다도 더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을 각오하는 것이 도리예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돼요.

그런데 오늘날 한민족을 바라볼 때, 무슨 애착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어요. 그러면 통일교인은 뭘할 것이냐? 그러한 환경이 되어 온 연고로 오늘날 우리는 3년노정과 7년노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부락에 들어가게 되면 뭘할 것이냐? 농촌에 가게 되면 호미자루를 쥐고 지금까지 농민들이 무시하던 농토를 갈고 닦는 거예요. 진정 심혈을 기울여 눈물을 흘리면서 땅을 파는 거예요. 자녀들이 무식한 것은 부모들이 무식한 탓이니 오늘날 우리들은 그 자녀를 붙들고 가르치자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니 거기서 우리는 하늘을…. 이 민족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개인주의적 입장에 있으니, 나라에 대하여 관심이 없고 애착심이 없으니 이것을 길러 줘야 되겠다는 거예요.

조그만 한 소녀가 혹은 소년이 그 부락에 들어가게 될 때 반대받는 입장에 서면, 보면 일면으론 원통하고 분하지마는 관심을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는 제일 좋은 입장에 있다는 거예요. 전부 다 나쁘다는 입장에 스스로 들어가서 원리 말씀을 전하고 봉사하니 총 단결해서 반대한다는 거예요. 싫든 좋든 나쁘든간에 어쨌든 자기들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동원되더라도 전체가 하나되어 동원된다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자기 멋대로 욕도 해보고 천대도 해보고 할 짓 다 해봤다는 거예요. 그러나 지내 놓고 보니 '내가 이 땅을 위하여 눈물 흘리지 못했는데 저들은 이 땅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내가 자녀들을 위하여 가르칠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저들은 자녀들을 가르쳤고, 나는 지방의 유지요 책임자인데도 나라를 위하고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 흘리지 못하고 희생하지 못했는데 저들은 그렇게 했다. 우리들이 잘 하려고 했지만서도, 옳은 입장에서 했다고 하지만서도 지내고 보니 저들은 이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렸고, 저들은 우리들의 농촌을 위하여 땀을 흘렸고, 우리 자녀를 위하여 피땀을 개의치 아니하고 고생의 길, 굶주림의 길, 핍박의 길도 참고 나갔다. 나는 뭘 했던고?' 이렇게 반성시키는 거예요.

그거 보면 난 생각합니다. 통일교회가 욕먹기를 잘했다 이거예요. 왜? 어떡하든지 반대를 하더라도 전체가 반대하니 관심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지내다 보니 자기들이 잘못된 걸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이 어린 그들이 눈물 흘리는 걸 바라보고 굶주린 생활을 바라보고 비참한 고난 가운데서도 참고 도리어 자기들을 위하여 수고한 걸 알게 될 때 이들은 전부가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아무개가 이 논뚝에서 혹은 이 밭고랑에서 눈물 흘리며 김을 맸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건 왜? 우리를 위함이요, 그 나이 어린 청소년이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그랬다는 것을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면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를 자기 동네와 같이, 이장이니 무엇이니 책임진 사람들이 돌보지 않아도 타지방의 관계 없는 청소년들이 와 가지고 그 부락에 관심을 갖고 자기 집과 같이 거느리고 품고 뒤넘이치면서 자기의 일신은 초라해지고 비참해지고 처량해지는 걸 잊어버리고 움직였던 것이 말없는 표어가 된다는 거예요. 관심 없던 이 민족에게 관심사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여러분들이 고생했던 것이 얼마나….

이래 가지고 3년 동안 우리는 뭘했나? 한 거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회 적은 교인들을 삼천리 반도에 골고루 파송시켜 놓은 거예요. 전도하는 거예요. 가서 고생해라, 붙들고 눈물 흘리면서 고생해라, 피땀 흘리면서 감사해라! 그러면 가고 난 후에 생각하는 사람들은 '야, 아무개야! 여기 왔던 통일교회 청소년들은 우리 손자 같은 나이요, 우리 아들딸과 같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알고 보니 우리보다도 나이 많은 사람보다도 누구보다도…' 하는 거예요. 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없어졌더라도 자기 자식들 대하여 마음으로 '야 이녀석아, 너 아무때 그 통일교회 청년같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부모네들이 그렇게 생각이라도 한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니 자식들 대해서 진정한 마음을 가져 가지고 한마디 교훈이라도 할 수 있는 기반이 닦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체적인 원칙을 그 부락민 앞에, 양심을 가진 유지들의 마음 앞에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극이라도 줘야 돼요. 이래서 이 민족을 구하는 데 있어서는 통일교회 사람과 같이 저렇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방향을 세워 주자는 것이 3년 기간에 선생님이 바라는 목표입니다. 이것이 맞았단 말입니다.

지난번 여러분이 전도 갔다 왔지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남지 않았는데 무엇이 남았느냐? 욕먹은 건 남고, 굶은 건 남고, 걸어 다니느라 발바닥이 찢어지면서 다비(たび;양말,버선)짝 끌고 다닌 건 남고, 째진 양복 입고 다니면서 천대받은 건 남았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들은 죽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 부락이 발전 못했더라도 그들이 움직이면 발전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떠나더라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랬을까? 그들이 온 뒤에 그렇게 됐어? 뭐 어떻게 돼 그래?' 한다는 거예요. 어차피 걸릴 수 있는 관심의 조건을 제시해 준 거예요. 그 조건을 마음에서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실증적인 사실들이 그들의 생활무대에, 그들의 마음 자리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이 한때에 가서는 동기가 되어 '통일의 무리가 이렇다' 하게 될 때는 그것을 되살려 가지고 제2의 출발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런 기반을 닦는 데 우리는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전도 못 했다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3년노정에서 큰 성과 거둘 것을 원치 않았어요. 만일 한 도면 한 도에 집중해서 4,5천 명을 동원했던들 오늘 통일교인은 지금의 몇십 배 혹은 몇백 배 교인들이 됐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