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집: 신앙의 심도 1971년 05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36 Search Speeches

세계복귀의 지렛대

오늘 '신앙의 심도'라는 주제로 말씀하고 있지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중심삼은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일신을 위해 사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팔려가는 종의 몸보다 더한 신세입니다그 시대에 팔리는 몸이 되기 보다는 미래 세계와 전체 역사와 더불어 운명을 같이하기 위해 팔리는 몸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를 위해서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완전히 역사 앞에 있어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남아 있는 것은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요, 역사의 해결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가지고는, 그런 기원이 없어 가지고는 세계를 요리할 새로운 운동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와 같은 내용을 갖지 않고는 지상을 중심삼고 역사할 수 없을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전체를 복귀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부자집에 팔려온 종의 입장에서 주인을 위해 생애를 바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그주인 앞에 칭찬받은 생애를 남긴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수고한 것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그 사람의 수고에 몇천만 배 더 가중한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모 안에 효도를 하여 효자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효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효자가 부모에게 효도하는 그런 입장과 같을 것인가?

다른 것입니다. 역사를 대신해서 찾아온 길이요, 시대를 대표한 길이요, 미래의 출발의 기원이 되어야 할 그런 자리인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효자 중의 효자가 나와야 되겠느냐. 이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아야 됩니다. 내가 언제 세계와 더불어 살아 봤느냐? 내가 언제 이 민족과 더불어 살아 봤느냐? 더 나아가서는 민족이 망하고 세계 역사도 변해왔지만 그 변하는 역사도 넘어 서고 민족의 망하는 운세도 넘어서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 봤느냐?

그러면 망하는 운세를 가로막고 세워 놓으시려니 하나님은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그렇잖아요? 한 집이 망하는 것을 바로잡으려면 십 년 수고해도 어려운데. 이 천지가 망해 떨어지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6천년 동안 수고하셨는데도 바로잡지 못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틈바구니에서 지렛대 놀음을 누가 해야 되느냐? 그것은 하나님이 혼자 하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지렛대의 끝을 쥐고 지레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지렛대는 누가 되어야 하느냐? 하나님이 아닙니다.

원리를 두고 볼 때, 누가 되어야 한다고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나'입니다. 내가 지렛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렛대가 되려면 찢기는 밑창에 들어가야 되는데 거기에 누가 들어가야 되느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세워 나오는 과정에서는 지렛대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찢겨 죽은 수많은 개인도 있었고, 수많은 가정도 있었고, 수많은 민족도 있었던 것입니다.

찢겨서 죽은 것을 다시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찢겨 죽은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있는 종교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종교가 남아진 이상의 힘을 가진 종교인이 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지렛대 끝, 희생의 첨단에 서 가지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가중된 힘, 밀어 제낄 수 있는 강도(强度)를 가진 힘의 모체가 되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렛대이기에 거꾸러지든 뒤집어지든 일그러지든 쩌그러지든 상관없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신념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내심에 그런 결심을 얼마나 해보았어요?

6천년 동안 박혀 있던 큰 집채 같은 바윗돌을 들어 가지고 옮겨 놓았다. 구원했다 할 때는 하늘땅이 얼마나 환성을 지르며 기뻐하겠습니까?

그럴 게 아니예요? 이것이 언제 한번 구르는 날에는 천하는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그런 어떠한 한계선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있는 힘을 다하여 틀려고 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 아니냐? 그래 주기를 바라는 소원의 일념이 남아 있을 것이 아니냐? 저끄러진 이 세상, 이 세상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을 굴러 넘기는 지렛대의 사영을 누가 할 것이냐?

'나는 구경하는 사람이 되겠다' 하는 사람은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